【행복할 권리】생명의 신비로움, 지구가 아파한대요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10.10 09:00 의견 0

흙냄새

정현종

흙냄새 맡으면

세상에 외롭지 않다

뒷산에 올라가 삭정이로 흙을 파헤치고 거기 코를 박는다. 아아, 이 흙냄새! 이 깊은 향기는 어디 가서 닿는가. 머나멀다. 생명이다. 그 원천. 크나큰 품. 깊은 숨.

생명이 다아 여기 모인다. 이 향기 속에 붐빈다. 감자처럼 주렁주렁 딸려 올라온다.

흙냄새여

생명의 한통속이여.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中에서

새봄 3

김지하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달랑무와 돌산갓 씨를 뿌렸다. 마침 비가 와 밭에 가 보았다.

발아시기에 씨앗은 주위 환경에서 물을 흡수하여 단순히 크기 성장만 하지만, 곧 뿌리와 싹의 끝부분에 있는 분열조직에서 세포분열이 일어나 활발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이때를 우리는 떡잎이라 한다.

떡잎의 역할은 떡잎이 위로 전개 되어 광합성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뿌리가 만들어 주는 영양을 양분으로 줄기와 본옆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비 나리는 밭에 우산을 들고 쪼그려 앉은 채 한참 그걸 내려다 보았다.

며칠 전 원주 생명문학제에서 나는 문학에서의 생명사상을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다룬 부분이 詩, 소설에서의 생명체의 기원, 구조, 기능, 성장, 분화및 분류, 생태학적 상호작용. 다른 생명체와의 관련이었다.

마침, 달랑무와 갓씨를 뿌린 이후라 나름 새삼스러웠다.


나는 원래 글을 쓸 때는 다른 이들의 책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글을 쓰다 감을 잃은 것이다. 그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옛날처럼 집중을 잘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다시 자판기를 두드릴 수 있었던 건 미래소년 코난, 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이후였다.

미래소년 코난의 도입부는,

인류는 멸종했다. 세계의 절반이 소멸되고 대지각변동으로 지축은 뒤틀어지고 5개 대륙은 물로 가라앉았다, 라고 시작된다.

그렇다. 세상은 너무 썩어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곳곳에 죽음의 냄새가 넘쳐 흐른다.

아포칼립스, 정녕 멸망의 날들이 다가오는가. 회복은 불가능한 것일까. 존재가 끝나는 날들이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는 거 같다.

뉴스도 온통 난리다. 대홍수와 대지진, 그리고 화산폭발로 난리다.

그런데 밭에 가서 떡잎을 보니 그래도 살만한 거 같다. 아직 늦지 않았다, 는 마음의 불씨가 살아나는 거였다.

어릴 적 어디를 가도 그 어디나 다 낙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디스토피아, 그 어느 곳에도 낙원은 없단 말인가.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어디서?>

<바다에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활기차지만 가혹한 세상, 미래소년 코난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겨우 다시 자판기를 두드려 댈 수 있었다.

지진, 홍수소식을 듣고 답답했는데 그래도 가을에 초록을 보니 그래도 조금 살 것 같다. 가을비, 이젠 좀 그만 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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