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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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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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가을농사가 끝나지 않았다. 11월26일 동안거 들어가기 전 끝내야 할 농사가 하나 남았다.
농사는 나의 마음밭, 번뇌를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였다. 몸이 약해져 무리는 할 수 없다. 하여 앉을뱅이 농법으로 사브작 사브작 한다. 젊었을 때 올곧게 수행하지 못한 벌일 것이다.
물, 불. 흙, 바람. 어떤 이들은 출가생활이 힘들다 하는데 왜 나는 즐겁기만 할까. 절깐을 내려다보고 있는 느티나무를 보는데 바람이 불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오늘은 물이 얼고 춥다. 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커가는 높디 높은 느티나무를 한참 올려다 본다. 거개 느티나무는 일반적으로 가정집에는 심지 않는다.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집안에 심을 수 있는 나무와 심을 수 없는 나무가 있다. 집안에 심는 나무는 작아야 한다. 집보다 크면 전망을 가려서 안되고 뿌리가 집안으로 들어와도 안 된다.
공공기관이나, 교육기관도 그렇다. 가시나무나 민간에서 터부시 하는 나무는 잘 심지 않는다. 우리 민속에 가시나무, 특히 엄나무는 귀신을 예방한다고 대문 위에 걸어 둘 정도였다.
꼭 민속 때문이 아니더라도 학교나 공공기관에 선인장이나 복숭아 같은 나무는 잘 심지 않는다.
절깐도 그렇다. 봄이면 나는 제철음식으로 두릅나물을 좋아했다. 그렇게 두릅을 좋아해 두릅나무를 좀 심어볼까, 했는데 가시가 있어 저어했다. 민속, 미신이라지만 굳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할 이유는 없는 거였다. 한데 가시 없는 두릅나무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 작년에 가시가 없는 신종 두릅나무 뿌리 종근 파는 곳을 찾았고 식재 방법을 배웠다. 하여 시험삼아 해보았다. <어, 이게 정말 되네.>하여 올 가을에는 <배달의 농사형제>하며 땅속에 묻을 사백 여개의 포트를 준비했다.
이번 동안거 90일 동안 그동안 마무리 하지 못한 화두를 끝낼 것이다.
포트를 준비하는 동안 찬찬히 마음의 때를 닦을 수 있었다. 그러다 또다른 집착이야, 하며 쓸쓸히 웃어본다. 그런데 이 세상 놀다 가는 거.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한다. 하지만 허송세월 하지 않고 내가 편안하고 즐거우면 그것으로 됐다.
11월26일. 다행이 동안거 들어 가기전, 땅이 얼기 전에는 끝날 거 같다. 내년 봄에 절 주위에 심고 한 해 정성들여 키우면, 내후년에는 가시 없는 두릅나무의 나물을 실컷 따먹고 나눌 수 있을 거 같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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