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새삥 헌삥,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시게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11.07 09:00 의견 0

지코라는 가수가 있나 보다. 우연히 새삥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제목이 재밌다. 가사에, 잘 되면 셀럽/ 못 되면 평생 리셀러/

내 개성은 시대를 안 타 huh/ 안 타 cause

나는 새삥/ 모든 게 다 새삥

.......책임을 가진 삶은 생각보다 괴로워

시대를 타는 나는 헌삥이다. 모든 게 다 헌삥. 어쩔 것인가. 어쩌면 새삥이 아니라서 내 삶을 살 가치가 있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내가 새삥이었을 때 나는 어찌 살아야 할 지 몰랐다. 그냥 닥치는대로 살았다. 그러다보니 나쁜 일들도 많이 겪었다.

늘 새삥, 나만의 보컬로 나만의 문장으로 확고한 내 세계를 갖고 살고 싶었는데 말길, 생각의 길이 끊어질 때가 많았다. 심행처멸(心行處滅), 화두를 타파한 게 아니라. 그 나물에 그 밥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맹한 무기상태에 빠지는 거였다.

나름 노력하며 살았다. 허나 각자 다 달란트가 다른 모양이었다. 새삥이었을 때도 헌삥이 되어가며 환멸을 느끼며 점차 침묵에 들었다. 아둥바둥 사는 중생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고 그들의 삶이 좀더 나은 것으로 상향 조정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중생의 고통에 외면하는 승가를 보고 그 비겁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분노와 증오만 키우다 결국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결국 혼자가 되었다.

그랬다. 메이저 리그인 수도승(首都僧)이 되지 못하고 귀양살 듯 그 근처를 헛돌다 노스님을 찾아 갔었다.

<그래, 쉬었다, 가는 거. 그것도 한 수도(修道)야. 삼도의 하나 수행(修行)이라고. 그런데 머리 말고 가슴, 맨몸, 온몸으로 살아. 그러면 살아져. 그러니 오고 갈 곳이 없는 너부터 잘 살아.>

노사는 그렇게 말했다.

부처 또한 허상(虛相)이고 환영(幻影)일 뿐이라는 것이다, 라던 노스님. 고귀하고 명예로운 삶을 바라지 마라. 수행이란 사는 것이다. 살면 되지, 훌륭하기를 원했던 것이냐? 수행은 귀하고 명예로운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이 폐부를 찔렀다. 그렇다 해도 갈망했던, 부처의 그 근원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젠 너도 사는 맛 사는 멋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마이너 리그인 네놈이 잘 살아야, 수많은 마니너 리거들도 힘을 낼 거 아니냐?!>

내내 노스님의 말씀이 귀에 따라 다녔다.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고 성공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이 낫다, 는 것이. 절반은 실패한 인생이었지만 절반은 그래도 성공이었다.

<편협하게 굴지 마. 그래도 네놈이 나를 찾아온 건 너는 희망이 있는 놈이고, 사랑이 있는 놈이니 네놈은 무얼해도 잘 될 놈이다.>

크으. 과연 나는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살아왔던가.


나는 베이비 부머세대로 아직 육십대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 돌아보면 이젠 체력도 떨어지고 순발력도 떨어졌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몸과 말, 마음을 조심하게 된다. 몸 여기저기서는 고장신호를 보내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이가 드니 밥맛도 없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밥 먹던 양도 줄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가. 생각도 잘 나지 않고 행동도 굼떠졌다. 어찌할까, 천천히 그리고 조심조심 가는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나이듦이 멋있고 아름다운 이들을 종종 보곤한다.

주변에 선배들을 보면 인생 이모작이랄까, 인생2막이랄까. 나이들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 할까. 노스님들의 미소를 볼 때면 년륜이랄까, 그 경험, 지혜를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잘 되면 셀럽/ 못 되면 평생 리셀러/

내 개성은 시대를 타 huh/ 타 cause

나는 헌삥/ 모든 게 다 헌삥

.......책임을 가진 삶은 생각보다 괴로워

노스님이 요양병원에 계실 때였다. 연락을 받고 망설였다. 하여, 찾아갔더니. 내게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시게>하는 거였다. 내가 오히려 노스님에게 위로를 받고 온 것이다.

<거시기가 줄줄 새. 소변줄 꽂고 괄약근 조절이 안 되어 막 싸쟀기네. 재밌어, 너, 드러누워서 똥 사는 기분 알지?! 나 기저귀 찼다.>

노스님을 만나고 나오니 모든 것들이 더 특별해지고 소중해 졌었다.

<스님이 주시네요. 받으시랍니다. 너무 마르셨다고 맛있는 거 사 드시랍니다.>

나는 겨우 마련한 만원짜리 열 장이 든 봉투를 슬쩍 내밀고 왔는데 노스님의 손상좌가 쫓아 나와 내게 봉투 하나를 내미는 거였다. 열어보니 오만 원 권 열 장이 들어 있었다. 오래 전에 준비한 듯 떡하니 봉투에 내 법명이 적혀있었고.

나는 헌삥/ 모든 게 다 헌삥

.......책임을 가진 삶은 생각보다 재밌어

벌써 7년 전 낙엽이 마구 떨어지던 가을의 일이다. 그날을 생각하며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탱이가 오면 백, 민언이 성수가 오면 오십, 독사, 인천의 식이는 삼십, 또 장례식에 오지 않으면 어때, 하며 실실 웃어보는 11월 가을 어떤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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