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11.28 09:00
의견
0
미륵불 앞에 조리개를 열었다 닫아 본다. 나는 언제부터 여기 와 있었을까. 우리 기도 들어주소서. 왜 이리 초점이 맞질 않을까. 쌓인 눈 때문일까. 미륵불이 프레임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시 조리개를 조여본다.
누가 올려놓은 미륵불일까. 당신의 은혜로운 빛을 기다렸던 것일까. 배경도 맞질 않는다. 셔터속도를 조절해 두어번 인포커스로 찍어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카메라가 잘못된 것일까. 내가 잘못 산 것일까.
미륵불은 구도의 자세로 돌아 앉았다. 나만의 플래시, 조리개, 초점, 노출을 갖고 싶었는데. 아무리 셔터를 눌러대도 내 프레임 속에 미륵은 똑바로 앉지도 않고 걸어 나오지도 않는다. 뭐, 이딴 세상이 다 있어. 내가 삐딱했던 것일까. 불온했던 것일까. 다 내가 잘못한 까닭일까. 아니면 뭐 어쩌라고?
이제 와 도입부, 인트로(intro)를 바꿀 수는 없다. 언제부터 미륵대불 하나 모시고 싶었던가. 하여, 앵글을 바꿔본다. 어이, 고개를 좀 돌려봐.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너나 잘 살라고. 그러자 우는 건지, 웃는 건지의 묘한 전신, 상반신, 클로즈업. 내가 모시고 싶은 미륵불이랑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아웃포커스로 내가 살아온 지난 날들을 다 날려버린다.
몇 십 년이 지나고 다 늙은 고개를 돌려 손끝 발끝을 놀려 시선을 아래로 했다, 눈높이로 맞춰보았다가 밑에서 올려다도 보는데 미륵불이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도 않는다. 귀가 먹었나, 눈이 멀었나. 내 기도소리 들리지도 않는 건가. 내 기도빨이 부족해서인가. 찍어도 찍혀지지 않는 마애트리아. 다음 생은 어디에서 태어나야 할까?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내 눈을 귀를 입을 아무래도 버려야 할까보다.
에이....., 아직 그럴 순 없고 오래된, 조리개가 맞지 않는 카메라만 바꾸면 되겠지 뭐. 그래도 마애트리아!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주소서.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