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스님이 왔다 갔다. 일주일동안 귀가 근지러웠다. 선방에 입제 들어갔으나, 기침 감기로 도중하차하고 나온 것이다.
"폐렴이래요. 전염될까봐."
"음, 수고했네."
조카라고 했지만 환갑을 이태나 넘긴 놈이 뭔 불만이 그리 많은지 어린 아이처럼 징징거렸다.
"싹수가 보이질 않아요. 한국불교는 싹 다 갈아엎어야 해요."
"......그러지 왜?"
"그런데 혁명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지랄. 그럼?"
"저항, 반항?!"
세계를 관찰하는 주체가 어떤 시선에서 세계를 보느냐에 따라 관찰되는 사실의 모습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아마 우리는 편안히 죽을 수 없겠죠?"
"왜?"
"중생의 이름으로 살기에 시줏밥이 고통스럽고 괴로우니까요."
"그러니까, 네놈이 느끼는 고통은 결국 네놈이 살아남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 아냐? 그렇다면 다시 희망을 되찾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새롭게 살아야 하는거 아냐?"
고개를 끄덕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다 순간, 아차, 말려들었다,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놈이 노는 꼬라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 했다.
"미래를 말씀하시는 거죠? 미래는 너무 오래 되었어요."
"오래된 미래라."
그때, 놈이 걸망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노란 색 형광펜으로 밑줄 친 부분을 내게 내밀었다.
일반적으로 나는 미래라고 부르는 것과 "l'avenir" [오는 것]을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미래는 내일, 후, 다음 세기가 될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프로그램되고, 일정되고, 예측 가능한 미래가 있다. 하지만 미래가 있다, l’avenir (오는)는 완전히 예상치 못한 누군가를 가리킨다. 나에게, 그것이 진정한 미래다. 그것은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그들이 도착할 것을 예상할 수 없이 내가 오는 다른 사람. 그래서 알려진 미래 너머에 진정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도래할 것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을 때, 그것은 타인의 도래라는 점에서 l’avenir다.
- 자크 데리다
"無로, 空으로 가는 길 아니에요?"
"지랄 떨지 마. 부처와 중생은 없어도 저기 저거 보라고. 저 산과 물은 네놈이 나기 전부터 있었고 물도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고."
나는 내려다보이는 저수지와 건너편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놈이 밑줄 친 글들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던 나는 그만 피식 웃었다. 나는 데리다의 글들보다 놈이 그 밑줄 친 곳 옆에 끼적거린 글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심하게 흔들렸고 사물이 겹쳐 보이더니 종내는 검은 파스텔처럼 눈앞이 깜감해져 왔다. 그리고 뒤이어 머리가 뽀개지는 듯한 두통과 함께 현기증, 어지럼증으로 손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잡았다.
아무 일도 예상치 못한 일들은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달랐다면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밥그릇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대로였다. 모든 것이 나대로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라는 내것이라는 생각. 그 어리석음으로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내가 보기엔 내가 나로부터 지옥으로 끌려가는 거 같다. 나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의 기초 위에 존재하거늘. 모든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존재의 근본과 존재의 연속성을 느끼며 슬프게 침을 삼킨다. 아, 왜 이리 목이 따갑기만 한 건지.
"증상이 나랑 비슷하군. 쉬었다 가. 그렇게 바쁘게만 설쳐대지 말고. "
숨을 쉴 때마다 삭신이 녹아들어가는 통증에 시달렸다. 지독한 감기몸살이었다. 병원에 다녀왔고 링거를 맞았으며 약도 받았다. 의사는 입원을 종용했지만 그럴 처지는 되지 못했다. 그래도 놈은 입원했다, 퇴원하는 길이라고 했다.
놈의 논조는 비관적이었다. 미래도, 희망도 없다, 느니. 현실은 부조리하기만 하다,느니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썩어도 너무 썩었다느니, 나는 왜 태어나 왜 죽는가? 세계는 인간에게 나에게 무의미하기만 하다, 느니
"나는 너의 화두가 필멸할 신육(身肉), 슬픔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삶, 희망의 생이었으면 더 좋겠다. 제발, 죽음으로 징징거리지 말고. 이놈아. 네놈이 부드러운 옷과 좋은 음식을구했단 말이냐? 해탈, 자유를 논하기 전에 먼저 너로부터의 해방, 깨달음부터 구해보라고."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놈은 갔다. 보일러는 껐나, 하고 놈이 머물다 간 방에 들어가 점검을 하는데 책상 위에 편지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스님이 사주신 문막 황궁의 짜장면 맛은 참 일품이었어요, 하는 내용과 함께 봉투 속에는 삼십 만원이 들어 있었다.
놈이나 나나 공문(空門)에 들어섰으나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닌 건 마찬가지인가보다. 그동안 날이 푹했는데 다시 또 날이 추워지겠지. 콜록콜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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