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다. 입제기도를 하고 나오니 으실으실 춥다.
법당 앞 마당을 질러 요사채로 오는데 낙엽을 떨군 큰 느티나무가 높은 하늘로 서서 반긴다. 나무는 늘 하늘을 바라보고 우뚝 서있다. 새도록 풍경소리 들으며. 봄에는 봄으로 겨울에는 찬 바람으로 가슴 내밀고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듯 내려다본다.
나무는 그 많던 잎들을 어찌했는가? 슬픔이었을까, 맘 조리던 고통이었을까?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데 잠을 자며 아침을 기다렸을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목(裸木), 잎이 다 떨어져 제행무상의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나무다. 그런 걸 보면 나무는 인내심이 보통이 아니다.
바람에 굽히고 흔들리며, 천둥 번개 속에서도 유연하게 나를 바라봐 준다. 마치 내게, 적응하라고, 버텨내라고....이겨내라고 우주의 그 모든 있고 없는 유상무상(有象無象), 어중이떠중이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부초처럼 떠돌던 목숨, 머물고 싶어 떠나던 길의 운수(雲水). 구름처럼 물처럼, 머무는 바 없이 허무하게 떠돌고 떠돌던. 무라, 공이라.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다던.
가없는 하늘아래 이 세상에 와 저 세상으로 떠나가는 인연이었다.
마음 또한 머무는 곳 없을 진대 몸이 본래 어디 있던가. 은빛 찬란한 새벽과 금빛 찬란한 서녘 노을 바라보며 한 생을 머물 수 있었던 건 인연이었고 가피였을 것이다.
산은 늘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숲은 나무와 새들의 안락처였다.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크기의 나무들이 어린 나를 뛰어 놀게 했으며 성장시켜주었고 살찐 젖가슴을 내어주었다.
그랬다. 나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자그마했고 가녀렸고 아련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산이 숲이 내어준 영양분을 받아 먹으며 우뚝 설 수 있었다. 눈물 흘릴 때면 귀엽고 사랑스런 작은 새들이 다가와 노래 불러 주었고 산당화, 산목련, 하늘의 흰 구름들, 바람들이 물결져 와 사계절을 통과하며 어린 나를 위로해 주곤 했다.
찔레순이며, 싱아, 진달래꽃, 산딸기, 뽕나무의 오디, 가을이면 똘배, 깨금, 도토리, 밤. 그랬다. 산은 내게 조용히 힘을 길러주었다. 슬퍼할 때마다 감사할 줄 알게 했으며 그 모든 시절을 견디며, 힘과 회복력으로 오늘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랬다. 삶이 고(苦)인 건 어쩔 수 없는 일, 행복한 사람은 오직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거였다.
어쩌다 보니 염불이 길어져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센티해졌다. 이산저산 산협(山峽)을 돌아들어 마침 일출을 보고 산의 날짐승처럼 살았던 유거(幽居)의 지난 날들이 휙 지나가는 거 같다. 오늘은 산새들이 유난히 크게 우는 거 같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