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초목이야기】외투
백목련, 레이어드 룩으로 겨울을 보냈던 모양이다
홍은기 온투게더 대표
승인
2024.02.14 09:00 | 최종 수정 2024.02.14 09:01
의견
0
설날 연휴에 북악산을 올랐다가 목련 꽃눈이 눈에 들어왔다. 딱딱한 껍질을 한 꺼풀 벗겨 내고 있는 참이었다. 마치 겨울 외투를 벗고 봄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3월에 꽃피울 때까지 이렇게 대여섯 번 껍질을 벗겨 낸다.
목련 꽃눈이 북슬북슬하니 탐스럽게 보이기만 한 줄 알았다. 한여름에 꽃눈을 준비하면서 이리 두툼한 갑옷까지 장만해 놓은 줄은 몰랐던 거다. 꽃이 지자마자 옷을 한둘씩 겹쳐 입기 시작해서 레이어드 룩으로 겨울을 보냈던 모양이다.
이런 용의주도함이 없고서는 봄날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 목련꽃도 없다. 그걸 알고나 목련꽃 필 때 김포를 운운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뜬금없다. 목련 앞에서 괜스레 민망했다. 한낱 목련꽃 한 송이에도 부끄러워할 줄 알았으면 한다.
옛 선인들도 그랬나 보다. 꽃눈이 붓을 닮아서 목련을 목필 木筆이라고 불렀단다. 목련 꽃눈에서 묵향이 느껴진다. 상소를 올리는 먹먹한 심정이 되어본다. 새삼 목련 꽃눈을 보면서 꽃보다 꽃눈이 더 아름답다. 이제 외투를 벗을 때다.
* 이 글은 '초목이야기' 블로그에서 더 많은 사진과 함께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