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꿈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3.29 09:00 | 최종 수정 2024.03.29 10:58 의견 0

꿈1.

"흐음, 어렵네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눈빛과 태도로 보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 대부계 여직원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거래실적이 일체 없다며 입을 닫았다. 상담이 끝났다는 듯 창구 앞에 앉은 내게 시선을 거두고 컴퓨터 화면을 보며 손으로는 자판을 두드려댔다.

'내가 이거 밖에 되지 않나', 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거절 당하고 막 일어서려 하는데,

'담보대출로 하시죠?' 하고 여직원이 말했다.

"담보는 요?"

"제가 최고로 아끼는 부처님 맡기겠습니다."

나의 말에 여직원 보다 직급이 높은지 뒤의 책상에 앉아있던 사내가 큰 웃음으로 웃는 바람에 나는 그만 꿈에서 깨고 말았다.


꿈2.

사과 배 참외 바나나 오색 과일과 오색 나물이 놓인 단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서 내가 북을 치고 있었다. 요령, 태징이 아니라 북을 잡고 있는 걸로 보아 법주(재를 주관하는 스님)는 아니고 재를 진행하는 법주를 도와주는 바라지인 거 같았다. 위패를 보니 사십구재는 아닌 거 같고 천도재 인 듯 했다.

북을 치다가 법주가 염불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태징 줘봐요, 밥먹고 중노릇만 한 양반이 그리도 염불을 못 해요?'하며 내가 장엄염불을 해대는 거였다. 얼씨구, 나비춤 바라춤 추러 온 비구니들의 춤도 엉망이었다. 발이 삐끗하고 정성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비구니들이 춤추던 바라를 빼앗고 덩실덩실 춤을 추다 잿상의 밥을 우걱우걱 퍼먹는 것이 아닌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연속극처럼 꿈 두 개를 꾸었고 그 꿈을 다 기억해 냈다. 꿈속에서의 은행문턱이 왜 그리 높던지, 여직원은 왜 그리 친절하지 않던지. 꿈속에서 나는 뭘 하려고 대출받으려 했던 것일까. 그 금액은 얼마쯤이었을까. 삶은 살아 있는 동안, 깨어 활동할 때 만이 삶일 뿐인데 꿈속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리도 신용도가 없어 인생바닥을 기었단 것인지.

내가 죽었었단 말인가, 중이 염불 좀 못한다고 죽은 내가 산 이들에게 끼어들어 북치고 춤추는 꿈이라니.

낄낄대고 웃었다. 커피 물을 올리며 웃다가 헛기침을 삼켰다. 그저 인생바닥을 헤매는 꿈일 뿐이었는데도 꿈 밖에서 '그런 구질구질한 꿈 밖에 꾸지 못하나?'하며 서운해 하고 아쉬워하는 내가 재밌어 다시 킬킬대고 웃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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