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상주의 미소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4.30 09:00 의견 0

상주의 미소

이 위 발

아버지 등에 올라타고

문상에서 돌아오는 길

밤의 속도는 너무 느리다

눈먼 가로등은

두 팔을 벌린 전봇대를

보지 못하고

빗자루 같은 가로수는

달이 사라진

하늘만 쓸고 있는데

가든지 서든지

쉼 없이 깜박이는

황색의 신호등은

내 눈을 닮았다

상주의 얼굴만큼

문상객들로 넘쳐나는

어둠을 넘긴 영안실

아버지와 동거한 지 일년

안고, 닦고, 치우고,

딱 하루 지켜주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그 냄새, 그 향기가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고

하늘나리꽃을 닮은 상주는

지금도 아버지 등에 업혀

미소 짓고 있다

이위발 시인, 경북 영양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지난밤에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등과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평전 『이육사』가 있다.


# 상주의 미소는 씻김굿과 같은 한편의 시다.

장례(葬禮)는 산 사람, 남은 이들이 죽은 이를 저승으로 무사히 보내주기 위해 치러지게 되는 의식이다. 보통은 3일장을 진행하며 1일차 영안실 안치, 분향소를 설치하고 거개가 2일차에 입관한다. 그리고 3일이 되면 발인이 진행된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치르던 장례 방식은 매장이었지만, 현대 한국에서 대부분의 경우는 화장을 거친 다음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장이든 화장이던, 장례기간 중 영정사진과 마지막을 함께 한다. 이동할 때 상주가 영정사진을 안고 맨 먼저 이동하게 된다. 시인은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고 가는 걸, 아버지 등에 올라타고 업혀 가는 걸로 표현했다. 이 詩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천년만년 살 거 같지만 언젠가 우리는 죽는다. 죽기 전에 사는 것이다.

코끼리는 죽으면 살아남은 코끼리들이 죽은 코끼리의 냄새를 맡고 울어대며 모여 애도한다, 고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까마귀, 어치, 제비 등의 새도 동료가 죽으면 무리 전체가 그 근처에서 울면서 머물다가 떠난다, 고 한다. 나는 절 앞 오래된 참나무에 둥지를 틀었던 까치가 죽자 까치들이 땅까지 내려와 죽은 까치의 시신 앞에서 부리를 가져다 대고 밀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장례는 죽은 이의 한이 끝나는 의식이다. 사람이 죽으면 종교에서는 지옥이나 천당을 간다 하지만 죽은 이의 입장에서 보면 살았던 몸을 버리고 이승에서의 여행을 마치는 것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죽음을 <문상>이라고 했다. 그렇게 객관화 했을 때, 아버지가 영정사진이 아들을 업고 이 지상의 땅을 꾹꾹 밟고 가는 마지막 길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순간, 아픔과 비애를 넘어서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살이, 아버지의 그 냄새 향기에 아버지에게 감사해 하며 용서를 빌 뿐이다. 서글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미소지을 뿐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아버지 등에 업히는 건 아버지가 원과 한을 풀고 편안히 가셨으면 하고 바라는 거다. 그리고 살아 남아 있는 이들이 더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지금 막 태어나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기뻐할 것이고

지금 막 운명해 황망해 하다 장례를 준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지금 이순간, 그렇듯 우리들의 삶은 늘 죽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봄비가 내린다. 우리들의 어머님, 아버님 무덤 위로 붉은 진달래는 피어 붉을 것이다. 봉분은 또 봄비에 젖을 것이고.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씨던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던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무덤위의 쑥도 쑥쑥 자라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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