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7.16 09:00 | 최종 수정 2024.07.16 10:29 의견 0

오늘도 쪽배를 타고 깨달음의 바다를 건너려는데 사제(師弟) 둘이 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실상이죠?"

불쑥 선문답 같은 걸 던졌다.

쫓기듯 끌리듯 살아온 나는 아무 대답이 없다. '아직도 여정은 멀어. 네 안에 세상이 있는 거지, 세상을 위해 네가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도 눈 뜨면 지옥이지?'하며 냉소적으로 입을 열었다. 사제가 픽 웃었다.

"저에게 들리는 것이 사형에게는 보여요?"

사제가 바보처럼 입을 헤 벌렸다가 실쭉 웃으며 되물었다.

"나 눈 먼 지 오래됐어. 모든 진실이 모든 이의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누구나 지옥이 벼락처럼 온다는 건 알아."

고추 끈 매느라 팔이 후들거렸다. 잠시 허리를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산다는 게 살수록 더 천박해지고 구차해져 감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게요.'하며 두 사제가 킥킥대고 웃는다. 사제 둘과 나는 깨달아 새세상을 만나지 못해 뱀처럼 뒤엉키고 구더기처럼 꼬물꼬물 그저 부처님 밥, 시주밥만 축내던 불교죄인들이었다.

"마음이 부처요, 법이라는데 제겐 하늘이 어디로 갔는지 없어요?"

큰 비가 올 듯 바람에 나뭇잎들이 펄럭거렸다.

"그럼 하늘더러 다시 오라 해. 그래도 나처럼 신도들 복이나 빌어주고 기도나 하며 사는 땡초는 되지 않았잖어."

"혐오와 숭배는 한끝 차이라고요. 제게서 떠난 하늘이 왜 이리도 부끄럽고 창피한지 모르겠어요."

".....몰라. 고통의 바다는 언제나 험로고 협로야."

비참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나였다.

"그 험하고 좁은 길을 잘도 왔는데요."

"가면 갈수록 열반의 바다가 아니라 고통의 바다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요."

"다만 넓은 바다를 떠다니는 배처럼 걸림도 막힘도 없이 자유롭고 싶었지? 분별이 분별을 낳는 법이야. 해와 달은 빛을 잃고 이제 곧 땅은 꺼질 것이고 대멸종, 대재앙의 크나큰 변괴가 일어날 조짐이야."

잔을 들고 다신 우리 만나지 말자며 소리치던 사제들이었다.

"사형, 짜장면에 탕수육 어때요?"

"좋지. 내가 살께."

"곡차도 일병요."

막내가 끼어들었다. 내가 씩 웃으며 알았어, 했다. 왠지 쓸쓸하고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한편 멀리서들 찾아와 짜장면에 탕수육 밖에 사주지 못해도 행복하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랬다. 내게는 위대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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