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너의 주인공은 어느 곳에 있어 안신입명 하겠는고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9.24 08:00 의견 0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 너의 주인공은 어느 곳에 있어 안신입명(無夢無想時 我主人公 在甚麽處 安身立命)하겠는고?

평생, 나의 화두였다. 중은 산냄새가 나야 한다. 산냄새라뇨? 했더니 화두냄새라는 거였다. 내가 받은 화두에 나는 궁금증을 어쩌지 못했다.

화두를 받았을 때는 그 뜻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 향냄새 조금 맡고보니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었고 삼보의 은혜를 알게 되었으며 스승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다. 철들자 이별이라더니......, 삭발위승, 어느새 다 살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부모도 스승도 이미 다 내게 떠나버리신지 오래다. 그렇게 화두는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하지만 삶은 피곤하고 고단했다. 잔인했다고나 할까.

중의 몸에서 산내음이 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속인과 다를 바가 무엇 있겠느냐? 속세의 욕망을 버리라, 했거늘. 누가 속세를 버리라 했더냐?

속세로 도망치고 싶었다. 맹랑하게도 색깔 있는 옷도 입고 싶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다. 그니도 보고 싶었다.

진지한 표정이었고 아주 심각했었다. 스승은 그런 나를 온통 흔들어 놓은 것이다. 감동 먹은 채로 차수를 한 채 병신처럼 서 있었다. 고운 꽃에 비바람 폭풍, 벼락이 없다면 어찌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는 논지였다. 그러나 그때 껍질 속에 있을 때 다 잔소리로 들리는 햇중이었을 때, 그 때는 그 말에 멈칫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실 그 깊은 뜻은 몰랐다. 세월이 지나고 내 몸에 붙어 있던 고슴도치 모양 달라붙어 있던 팔만사천의 뿔들. 그 껍질들을 탈각(脫却)해 보니, 이제 나도 노스님처럼 쇠노(衰老)해보니 그 시절이 새록새록 그리웁다.


그때 나의 울음은 차가웠고 만월의 달빛은 곤혹스러웠다.

세상이 바뀌기를 원하느냐? 이놈아 네놈이 먼저 바뀌어라. 태어났기에 늙음도 있고 병듦도 있으며 고통도 죽음도 있는 거, 라는 거였다.

이 사바세상, 네가 가는 곳 모든 곳이 다 너의 인연지지(因緣之地)인 것이다. 가서 주인이 되어라.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라.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피를 끓게 했을까. 그리고 그 무엇이 사슬이 되었던가.

도둑고양이처럼 추위와 허기에 떨었다.

너도 나그네, 나도 나그네일 뿐이다. 자본에 물든 자본에 길들여진 불교 속에서라도 세상의 노예 너의 노예가 되지 말도록. 불교적 틀에 갇혀 살지 말아라. 불교교리가 절대 진리는 아니다. 교리는 그저 불교적 규례일 뿐이다. 율법론자가 되어 불교의 틀에 갇혀서는 깨달음과는 팔만사천리 멀어질 것이다. 자등명 법등명, 영혼의 등불을 밝혀라.

그랬다. 위태한 일상들, 이제 나는 늙고 지리멸렬해졌다. 홀로 피는 연꽃이 아니라 연꽃을 피우는 진흙이고져 했건만. 혁명은 물건너 갔던가. 그러나 그닥 기분이 더럽지만은 않았다. 조금 침울해 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 너의 주인공은 어느 곳에 있어 안신입명(無夢無想時 我主人公 在甚麽處 安身立命)하겠는고?>

벙어리가 꿈을 꾸면 누구에게 이야기 하지? 내가 나에게 입술을 실룩이며 물어본다.

그렇게 꿈속에서 만난 꿈처럼 아승지겁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건너 가는 나그네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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