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김리영 시집, 『푸른 목마 게스트하우스』
솔직하고 파토스 넘치는 종교적 영성의 파편을 보여주는 김리영의 시들
조용석 기자
승인
2024.11.18 11:15
의견
0
시인의 과거와 현재, 춤과 시,
외로움과 무쇠뿔 같은 의지,
가난과 낭만을 '시'로 육화하고 있다.
1991년 월간 『현대문학』에 시 「죽은 개의 슬픔」 외 5편으로 등단하고 2016년 선보인 네 번째 시집 『춤으로 쓴 편지』가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제4회 바움문학작품상, 제3회 공간시낭독회 문학상을 수상한 김리영 시인이 8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푸른 목마 게스트하우스』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73번으로 출간하였다.
김리영의 시집 『푸른 목마 게스트하우스』는 과거와 현재, 춤과 시, 외로움과 무쇠뿔 같은 의지, 가난과 낭만을 시라는 이름으로 육화하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시적 육화란 단순히 추억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 순례자로서의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 영성의 파편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한다.
이번 시집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색다른 인식과 그에 따른 시적 형상화라 할 수 있다. 어머니의 경우는 늘 잠재된 인식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시적 화자의 현재적 지위로서 어머니와 겹쳐져 나타나는 특징을 가진다. 아버지의 경우는 실재하지만 시적 화자의 입장에서는 늘 부재하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이 상실과 결핍이 김리영 시인을 외로운 존재로서의 자각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을 터이며 동시에 시를 쓰게 되는 동기가 되었을 법하다.
자신과 어머니에 대한 「동백 엄마」의 시적 모티브는 표제시 「푸른 목마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머니로서의 자신과 아들과의 대화 형식의 시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이국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대화에서 어머니(시적 화자 자신)는 아들에게 눈을 감고 회전목마를 타는 상상을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동백 엄마」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딸과 이 시에서 회전목마를 타는 아들의 형상은 겹쳐져 있다.
김리영 시인에게 춤은 이 세계를 이해하는 촉수와 같다. 시집 2부에는 특별히 춤에 관한 시편들이 많다. 어쩌면 삼라만상의 모든 움직임이 시적 화자에게는 춤의 형식으로 보인다 할 것이다. 「선녀춤」은 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무대의 풍경과 분장을 정리하는 공연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친 화장을/ 깨끗이 지우고 돌아갈 시간”이라는 진술은 실제 공간에 대한 진술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생에 대한 비유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춤의 완성은 관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시적 발화는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무대 향해 가면을 벗고/ 물끄러미 바라본 순간,/ 새하얀 깃털이 돋아났지”(「선녀춤」)라는 구절은 사람으로 형상화한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가면을 벗었을 때 무대 위의 공연자들의 세계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일 터이다. 세상살이를 이같은 이치로 이해한다 해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김리영의 시집 『푸른 목마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솔직하기도 하고 파토스 넘치는 자기 고백을 만날 수 있다. 게으른 몸을 두드려 함께 시적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떤 시는 이렇듯 무언가를 재촉한다. 긴 여름의 끝에서 눈이 시원하다. 김리영 시인의 시론에 해당하는 짧은 시 「나비길」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듯하다.
시인 김리영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세종대학 무용과를 졸업했고, 제3회 대한민국무용제에 출연했다. 1991년 『현대문학』에 시 「죽은 개의 슬픔」 외 5편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9년부터 미국 오리건주 애쉴랜드에서 로그커뮤니티컬리지(Rogue Community College) 영어교육을 이수했고, 오리건주립대학(Southern Oregon University)에서Art, 드로잉, 우뇌훈련을 공부했다. 2013년 〈모래의 여자〉, 〈Blow Up〉 무용 대본을 쓰고 2013 아르코 차세대안무가클래스 쇼케이스와 홍콩국제연극제에 출연했다. 2014년 뉴욕전자책전시회(Book Expo America NYC)에서 김리영 영상시집 앱북을 전시했다. 이후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서울, 경기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했다. 시집으로 『서기 1054년에 폭발한 그』(1993년), 『바람은 혼자 가네』(1999년), 『푸른 콩 한 줌』(2006년), 『춤으로 쓴 편지』(2016년)을 출간하여 2016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 제4회 바움문학작품상, 제3회 공간시낭독회 문학상을 수상했다.
■ 도서출판 북인 펴냄 / 값 11,000원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