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오늘도 가을을 탕진한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12.03 08:00 의견 0

불가의 화두 중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무(無)라,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 집착이 없는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내가 머무는 암자는 강원도 첩첩 산중에 있다. 암자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그 길옆은 바로 산이고 숲이다. 벚나무도 있고 뽕나무도 있고 참나무도 있고 매화도 있다. 고라니도 있고 산토끼도 있고 가끔 멧돼지도 출몰한다. 봄이면 희망의 싹을 돋우고 틔워 초록의 꿈을 꾸게 하곤 한다.

얼마나 산을 오르고 또 내렸을까. 나무와 풀과 하늘은 그 모습을 다 보았을 것이다.

나뭇잎들은 봄이면 엄지손톱만한 노랑이 들어간 연녹의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다 초록 빛을 띄었다가 짙은 녹음이 되곤 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차츰 노랑, 황색, 갈색으로 변해갔다.

나뭇잎들이 보여주는 사랑, 전언(傳言)은 무엇이었을까.

곱디곱게 맑고 밝게 피우던 꽃들, 그 환한 웃음으로 전하던 메시지는. 그렇게 계절마다 나뭇잎들이 전하는 사랑은 신비롭고 경이롭기만 했다.

그렇게 봄은 가고 여름도 가고 며칠 전에는 마침내 서리가 내렸다. 산중은 평지보다 추위가 먼저 찾아오곤 했다. 살짝 살얼음까지 얼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알록달록 단풍졌던 산은 푸르죽죽 거무죽죽 변했다. 폭삭 오그라들고 생기를 잃은 나뭇잎들을 보며 나는 눈을 씀벅거렸다. 오색 단풍졌던 산이 부르르 몸을 떤다고 할까, 바람이 불자 우수수 낙엽비가 되는 것이다.

원주 송정암 전경


그 모양을 보고 섰노라니 가을이 내게 주는 시어(詩語) 같기도 하고 보시(布施)같기도 했다. 그 햇살 바람과 몸 비비며 찬란하게 나를 맞이했던 목숨의 시절들. 한 때 나무의 추억이고 기쁨이고 꿈이고 노래였던 생명의 나뭇잎들. 떨어지는 목숨들을 보고 그 낙엽을 밟기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낙엽들이 한 잎 두 잎 쌓이고 암자를 오르는 길을 덮어가는 거였다. 가파른 비탈길이기에 낙엽을 쓸지 않으면 암자로 올라오는 차들의 바퀴가 헛돌아 위험하다. 가을이면 그렇게 낙엽을 쓸어야만 한다.

첩첩 산중의 집착과 연민을 쓸어내듯 그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낙엽들을 쓸자니 벌레에 갉아 먹힌 놈들도 있고 골다공증을 앓았는지 구멍이 뻥 뚫린 놈도 있다. 가을 나무들에게 버림받고 나에게 까지 쓸려 길 양쪽으로 밀려난 낙엽들이 허허로운지 붉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렇게 나뭇잎들의 생애를 쓸다 순간 물끄러미 하늘을 보았다. <꽃마다 열매 맺는 게 아니고 낙엽마다 책갈피에 끼워지는 건 아닌데. 나는 어떤 낙엽이지?>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한땐 새들도 벌들도 나비도 날아와 제 옆에 팔랑거렸어요. >하고 나뭇잎들이 입을 쭈뼛쭈뼛하다 입을 달싹거린다.

<그래, 잘했다. 수고 많았다. 너희들은 썩어 다시 새순, 새생명으로 태어날 것이야. 괴로움을 떠나 어찌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번뇌를 떠나 어찌 보리도를 얻을 수 있겠느냐. 괴로움 없이 즐거움도 없을 것이며 번뇌 없는 보리도를 어디서 구할 것이냐. 살을 태우던 땡볕, 매미들 울음이 없었다면 이 가을 황량함을 어찌 알 것이고 새싹에서 낙엽이 되어 보지 못하고 어찌 구도자라 할 것인가. 그래 고독과 절망을 이겨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너희들이 바로 구도자다.>하며 쓸려 있던 낙엽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한줌 집어 길 위에 다시 뿌려주며 웃음 짓는 아침이다.

그렇다. 이제 추워질 일만 남았다. 눈이 내리고 낙엽들은 얼고 썩을 것이다. 그러면 바스러져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산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내게 무(無)라, 무(無),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거늘 가져갈 것도 버릴 것도 없다는 스님이 무엇을 그리 바쁘게 오르내리시는지요, 하고 내게 쓸려나간 낙엽들이 경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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