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22시 20분~> 허술하게 덮은 지붕에 비가 새듯이 송정암 내란 비상 계엄선포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12.13 09:38 | 최종 수정 2024.12.13 12:00 의견 0

"터졌어요." 막내상좌가 급하게 내 방을 두드렸다. " 뭐가?"

눈 비비고 일어나보니, 보일러실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22시 30분> 허둥대다 보일러실의 누전으로 동안거중인 암자는 암흑천지가 되어 있었다. 두꺼비집 쪽으로 향해 불을 켜고 보일러실 쪽의 전원만 내리고 다시 스위치를 올렸다.

헌데 보일러실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출입이 통제되었다. 밖에서 발을 동동대다, "그라인더 가지고 와."했다.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문이 잠겼을 때 패트병을 잘라 안에 끼워 넣고 약간 비틀어 열어보려 했으나 여러차례 시도해 보아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중망치로 때려부수려다, 문까지 망가질 거 같아 그라인더로 출입문의 손잡이를 잘라버렸다.

<23시 04분> 폐쇄되었던 출입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23시 20분> 온수보일러의 물이 철철 새는 거였다. 전기가 차단되어 있어서인지 물은 더이상 새지 않았다. 연결부위가 터진 거였다.

<23시 50분경> 찬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웠다. 막내상좌에게 "내일 날이 밝으면 고치자." 했다.

<11시 10분~11시 55분> 인터넷 실시간으로 틀어놓은 ytn 뉴스 화면 속에서는 특전사 중심의 계엄군들이 국회 본회의장 집결(헬기 등 동원), 군헬기 국회 상공 포착, 군헬기 국회 착륙(11시 50분)

국회 정문과 후문에 상당수 특전사(7특수임무단), 계엄군 배치, 본회의장 앞까지 배치되어 시민들과 대치

계엄군(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서울 강서), 수도방위사령부 제 35특수임무대대(대 테러대응)은 실탄 무장, 국회 출입문 폐쇄

계엄선포 이전 특전사 대원들은 하루 종일 군장 메고 대기중(K1기관단총, 방탄모, 마스크, 방탄조끼, 야간투시경 착용)

<23시 51분> 무엇 때문에 계엄이 선포된 것이지? 의문이 일었다.

내가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가?

순간, 낮에 사제가 와 지하수 모터를 보온덮개로 감싸줄 때, 빗자루로 전선줄 부근을 쿡쿡 쑤셔 넣어 마무리 했던 걸 떠올렸다.

<00시 3분~10분경> 그때까지 랜턴을 들고 막내상좌는 보일러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압 모터 브레이크가 열을 받아 나갔고요, 그 바람에 온수보일러가 터져 물이 샜던 거 같아요.

<00시 30분경> "내일 날 밝으면 하자니까. 지금 내게 항명하는 거야?"했더니, "이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지 않을래요."했다. "고치지 않으면 다 얼어서 내일은 공사가 더 커져요."한다. 그 대답에 나는 우두망찰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놈이 날이 밝으면 떠나려 하는구나, 하고 가늠할 수 있었다.

<00시 35분경> 계엄은 반대, 철회되어야 한다

화면 속의 시민들은 어둠 속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애국가 등을 제창하고 있었다. 체포될 가능성까지 있었으나, 많은 시민들이 결연하게 참여하고 있었다.


<00시 48분경> 재적인원 과반수를 넘자, 우원식 의장이 본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안건 상정과 이를 표결할 수 있는 상태까지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01시 01분> 국회의원 190명 참석, 190명 찬성 : 비상계엄선포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시민들, 응원의 함성, 윤석열의 임기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야당의원 172명(민주154명, 혁신12명, 진보2명, 개혁1,기본1,사민1,무소속1명), 국민의힘 18명/ 선포후 155분)

<13시 11분> 계엄군이 철수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크게 즐기며 살자, 했는데

<13시 30분> 어둠 속에서 수곽을 들여다 보았다. 지하 100미터를 뚫어 파고 관정을 심어 놓은 곳이다. 집수정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 빗자루로 모터를 보온덮개로 덮어 놓은 곳 중 한 곳에 전선이 빠져 있었다.

찬 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거 같았다. 몸도 부들부들 떨렸다.

년전이었던가. 지하수 수중펌프 고장으로 지하수 펌프 교체했던 곳이었다. 지하수 펌프 작동 시 콘트롤박스의 차단기가 자주 떨어졌었다. 그러다 차단기를 올리면 한참 있으면 또 잘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 차단기가 떨어지곤 했다.

덮어놓은 이불이 물에 젖어 펌프누전으로 지하수 펌프 차단기만 떨어지면 다행인데 콘트롤 차단기 떨어지면서 절에 사용하던 컴퓨터며 가전제품들이 먹통이 될 때도 있었다. 특히 냉장고는 음식들이 다 쉬어버리는 거였다.

보온작업을 하며 전선연결부위를 검은 테이프로 덜 칭칭 감았던 게 그 원인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콘트롤박스를 설치하며 전선을 아끼려 했는지 빠진 전선을 다시 이으려니 전선이 짧았다. 막내가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되지 않았다. 하여

"가서 드릴 가지고 와. 고뇌하는 인간, 고뇌하지 않게 해줄 터이니."

결국, 드릴로 콘트롤 박스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7센티미터 옮겨야 했다. 그리고 누전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테이핑했다.

<13시 35분> 방으로 돌아와 진통제 한 알을 먹었다. 따스한 차 두 잔을 끓여 다시 보일러실로 향했다. 막내는 물이 솟구쳐 전선에 물이 묻은 부분들, 보일러실의 바닥을 수건과 걸레로 일일이 닦아내고 있었다. 몸은 여전히 벌벌 떨렸다.

문제는 유압 모터 브레이크가 나간 것이었다. 그때, "아, 있다."하고 소리쳤다. 고장난 모터 하나를 버리지 않고 창고에 넣어둔 게 있었다. 그곳에서 빼 쓰면 될 거였다.

<04시 45분>

풍경소리가 울었다.

"스님, 인사받으시죠."

내게 온몸으로 자비를 베풀어준 막내놈을 덥석 안았다.

먼 솔바람, 다시 안개가 꾸역꾸역 밀려오고 있었다.

풍경이 울었는가.

생사의 저쪽으로

산길 내려가는 막내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하다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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