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내 코야!

놀고 있으면 누군가 내 코를 붙잡고 비틀어 대는 거 같다. 아야 아야,

물이 흐르고 꽃 피는 것을 보고 새소리를 듣는다.

누구에게나 소임이 있다. 나의 소임은 중노릇이다.

말은 사물을 펴지 못하고

말은 기미를 살피지 못한다

공부하다 죽어라.

그 구절에 얽매이는 자는 미혹하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백장 선배가 말했다. '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고 대답했다. 왠지 그 대답이 무섭다.

어릴 적 공부를 너무 많이 했다. 책속에 파묻혀 살았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세계를 듣고보고 유희삼매(遊戱三昧)에만 빠진다면 창조적 오독(誤讀)은 있을 수 없고 깨달음은 없었던 거 같다.

뻐꾸기가 뻐꾹뻐꾹 끊임없이 말을 전한다. 뻐꾸기가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내게 말하는 거 같다. 삶은 천편만편(千片萬片)이다.

밥값했나?

어릴 적 큰 사형이 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관법과 돈오점수, 念處가 없는 글은 읽을 글이 아니다.

마음을 살피는 이 한 가지 일이 삶 전체를 이끌게 된다(觀心一法總攝諸行). 글쓰기는 본증묘수(本證妙修)이며 수증일여(修證一如)다.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음을 떨어뜨린다.

밥값은 모르겠고 발우는 지금도 씻고 있습니다.

큰 사형의 물음에 노스님이 그 물음에 대답을 하고 서계셨다.

그 꽃과 뻐꾸기 울음같았던 언어와 문자들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든, 점수(漸修)와 돈오(頓悟)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essential facts)을 만나는 일이었다.

물이 흐르고 꽃 피는 것을 보고 새소리를 듣는다.

다가가도 뻐꾸기는 달아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길

놀며 놀며 일한다.

땀을 흘리는 것이

부처를 섬기는 것이고

밥을 먹는 것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라 하던 노스님

먹고자고 애써 일하고 하다 힘들면 쉬고 졸리면 자고 배고플 때 밥 먹는다.

불각(不覺)의 날들이었다, 자오자득(自悟自得)이다. 사랑한다는 말, 뻐꾹뻐꾹. 아직도 당신의 구절에 미혹된다. ‘본래 깨달음(本覺)’ ‘처음 깨달음(始覺), 구경의 깨달음(究竟覺)은 무명(無始無明)이어늘 그 또한 염기염멸(念起念滅)이라 해도 한 생각 쉬어본다.

오늘도 땅 파고 씨 뿌려 농사를 짓는다.

젊은 날 책 좀 덜 보고

좌선도 조금만 덜 할 걸

생멸(生滅)을 멸이(滅已)하면 적멸(寂滅)이 위락(爲樂)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