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깼다. 요즘 한 두번은 꼭 깬다.
마음은 비밀이다.
내 마음은 비밀 안에 있는 비밀이다
중노릇 오래 하다보니 무감 무실
웬만해서 자극을 받지 않는다.
벙어리가 꿈을 꾸면 누구에게 이야기 할까.
마음을 좀체 드러내지도 않는다.
한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새벽형 인간이라 초저녁이면 떨어져 잤다. 낮에 하는 노동의 강도가 센 날은 특히 더했다. 전립선 비대로 야간뇨의로 잠에서 깬 거다. 두번째였다. 뒤척이다 일어난 김에 밖으로 나와 서니 별은 있는데 달이 없는 밤이었다. 달이 없을 리 없는데 어둠이 짙자 별빛은 더욱 빛났다.
문득, 낮에 왔던 글을 쓴다는 젊은 친구를 떠올렸다. "글?"하며 나는 짖궂은 표정으로 창백하고 연약해보이는 그를 건네보았다.
"스님은?"
물었다.
"나? 난 먹고 살게 없어 간절했고 절실했기 때문에 썼어."
내 말에 오랫동안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염불하고 참선 말고는 글 쓰는 거 밖에 없었어. 그러니 너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숨을 크게 몰아 쉬라고."
"......스님이 참 행복해보여요."
"나 그러려고 살아."
내 말에 글을 쓰겠다는 이와 같이 온 친구가 쿡쿡거리고 웃었다. 나도 낄낄거렸다.
"스승이?"
"오정희 선생님이요. 오정희 선생님만큼 쓰고 싶어요."
"그건 아니지.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달라야 해.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라고. 오정희 선생님의 글은 오정희 선생님만이 쓰실 수 있거든. 중요한 거라고. 이 커피가 자네에게 해골물이 되었음 하네."
될 듯 안 된다던 그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먹겠다는 듯.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불법을 구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났을 때였다.
국경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고, 밤이 깊어지자 원효는 목이 말라 물을 찾았다. 마침 근처에서 시원하고 맑은 물을 발견한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물을 마셨다. 물맛은 시원하고 달콤했으며, 원효대사는 갈증을 해소하고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아침이 밝고 나서야 자신이 마셨던 물이 사실은 해골에 고여 있던 빗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역겨움을 느끼고 울컥 토할 뻔했지만, 원효는 그 부분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다 하고 한소식을 접한 거였다.
"불교에서 꿈을 통하여 꿈에서 벗어나는 걸 여몽관(如夢觀)이라고 해."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세상은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마음의 작용인 것이다.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마음, 일심(一心)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한마음이 중요하다. 우리가 불행하다 느끼는 이유는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 때문이다.
"이 해골물 같은 커피를 마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도 어정거리지도 말고 컴퓨터 앞에 궁둥이 붙이고 써. 쓰고 고치고 다시 쓰라고. 기왕이면 상금이 큰 문학상에 도전해. 결코 그게 미망(迷妄)한 마음이 아니라고. 네가 그 장편을 완성한다면 그게 상구보리(上求菩提)이고 당선되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게 더불어 삶을 의미하는 것이니 바로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추켜주는 내 말에 그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듯 희미하게 미소짓는 거였다. 눈빛이 살아있다. 인생에 꿈이 없다면 삭막할 것이다. 그러나 꿈속의 꿈임을 알지만 꿈에서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고 그 꿈을 이룬다면 진여, 참살이, 행복한 삶이 되지 싶다.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문청인 거 같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점심 때 혼자 점심을 먹고 설겆이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내어준 커피잔을 씻으며 설거지를 다 해놓고 갔다.
오줌을 누고 툇마루에 앉으니 가슴이 활랑거렸다. '정처없이 떠돌던 내가 완전 쪼그라들었네.' 하고 시무룩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침이면 눈 뜨는 게 힘들었다. 머릿속이 하얫다.
그러다 '젠장, 전립선 약을 먹어야하나.'하고 씩 웃다 '교정보다 밀쳐둔 원고를 내가 어디에 두었지?'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도 해골물 한잔 끓여먹어볼까. 어떻게 여기까지 왔던가. 귀일심원 요익중생이거늘. 좌우지간 회향을 멋지게 해야 할텐데. "
하면서 다시 방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하늘의 별들이 오늘따라 더욱 반짝이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