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씨였다. 산중에 비 냄새 나는 바람이 새벽부터 불었다. 비린 냄새와 함께 이윽고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 빡빡 머리 위로, 키가 멀대 마냥 커가는 옥수수 위로 아직 고춧대를 박지 못한, 줄을 매지 못한 고추밭 위로 빗방울이 들었다.
한동안 가물었다. 비 같은 비는 오지 않았고 냇물은 말라만 갔다. 감질나게 내리던 비 때문에 호박잎은 축 쳐지고 강낭콩은 더위로 울타리로 올라가지 못하고 말라 비틀어져 있는 놈들도 보였다.
내리는 빗속에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동안의 날들이 헛된 삶이라고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비를 맞아본 게 언제였던가. 그러다 문득, 지난 날들이 부끄러워졌다. 부끄럽긴 하지만 비굴하지 않았다. 부족하고 불편해도 당당했기에. 허나 부끄러운 건 죽을 때가 되었는 데도 아직도 마음속에 분별과 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중생이고 인간미가 남아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는 거고."
무늬만 禪僧이었던 나에 비해 얼마 전 못난 나를 찾아왔던 산중 절간 속의 사형인 참선객다운 한 마디가 떠올랐다. '선객은 되지 못했고 겨우 산승은 된 거 같아요'라는 나의 말에.
"선객이라고 다 선객이 아니네. 부처 흉내나 내고 산 나보다 자네가 더 낫네. 동가식서가숙이니 선객이니 산승이니 따지는 게 그게 다 마음속의 분별이라네. 그래도 자네는 미륵, 새 날 새 세상을 향해 왔지 않는가."
사형이 임오년 생으로 말띠다. 팔순의 노선객에게 내가 한 방 맞은 거였다.
올곧은 승려, 수행자도 시인, 작가도 되지 못했다. 그냥 시가 좋았고 소설이 좋았다. 좋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어도 글을 쓸 때면 가슴 벅찼고 온몸은 뜨거웠다. 화장터의 아궁이로 들어가 푸른 연기 뼈다귀만 남길 몸뚱아리. 그래도 살아 온몸 뜨거웠고 가슴 벅찬 때가 있었으니.
"그나저나 스님아, 내가 내년에도 내가 이리 올 수 있을까?"
사형의 말을 되씹으며 고추밭에 홀로 고추 줄을 매고 방앗다리를 따주는데 홀딱 다 젖었다. 내겐 사제가 하나 뿐인데, 이번 철엔 개심사 선방에 앉아있다는데 한 번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나저나 내리는 비에 이리 온몸이 홀딱 젖어보기 얼마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