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바다엔 절벽이 있었다.

절벽 건너편으로 먼 해안선과 논바닥에 던져진 모판처럼 떠있는 몇 개의 섬들, 그 너머로 바라만 봐도 눈이 시린 수평선이 놓여 있었다.

철썩이던 파도

그 바다 때문에 이번 생 골치 아팠다.

업화(業火)였다.

나랑 바다엘 함께 가 절벽에 앉아보지 않은 이들은 내가 사랑하는 벗이 아니었다.

바다로 갈 때 우리는 꽃이 되고 나비가 되었다.

꽃들이 마치 鐘 같았다. 꽃 필 때 마다

울려퍼지는 그 향내가 날아다녔다.

허공의 진폭(振幅)을 울리는 울음이었다. 바람을 타고 와 뇌성(雷聲)으로 들려왔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나도 나이 먹을만큼 먹었는데

얼마나 더 나이 먹으면 깨달을 수 있는 건지.

보일 듯 보이지 않았고 들릴 듯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바다로 가는 날은 기분이 좋았다.

가다 보면 잊을까.

이꽃저꽃 꽃잎에 앉아 꿀을 빨아 먹거나 풀밭이나 들판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내가 찾던 떠돌던 바다


바다는 어디 있어요?

저 山 넘어 저 구름 밖

왜 가요?

안 갈켜주지.

갈 수 있겠어요 거기까지?

바람이 구름이 거기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거야.

치이, 그 바다보다는 다음 생이 더 빠르겠네.

주춤했다. 소름이 쫙 번졌다.

사실이었다. 한 몸의 바다

바람 부는 날이면

지친 몸이었지만 드넓은 바다를 생각하면 그래도 기운이 나곤 했는데.

세상을 모른다고, 이번 생 골치 아팠지만 그래도 제법 재밌었다.

절벽 건너편으로 먼 해안선과 모내기철에 논바닥에 던져진 모판처럼 떠있던 몇 개의 섬들, 그 너머로 바라만 봐도 눈이 시린 수평선이 놓여 있었다.

절벽 아래로 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갈매기 끼룩대는 바다, 저 언덕 너머 바다로 가자. 파도로 가자. 그런데 이번엔 누구랑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