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릴케 '엄숙한 시간' 중에서
지난 밤은 열대야, 폭염 속에 매미가 심하게 울었다. 매미는 한 마리 두 마리, 열마리도 넘었다. 밤을 이루지 못하다 릴케의 시를 떠올렸고 그러다 깜빡 잠들었다.
여전히 새벽이면 되면 나는 일어나야 했다. 초발심 자경문에 보면, 행주좌와 일체시와 일체처에 단행독보하라, 라는 말이 있다.
그 말 때문에 산에 사는 게 한평생 좋았다.
늦잠을 자려 해도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에 참새 떼들이 우르르 몰려와 잠을 깨우는 거였다. 나는 그 느티나무를 참새나무라 불렀다.
이상했다.
참새들의 새벽울음은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지 않은데 매미들의 울음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하여 새벽 산보길을 나섰다. 어두운 새벽이면 멀리 가지는 못하고 체력이 닿는 곳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오는게 나의 산책이었다.
무심히 걷노라면 봄이면 무논의 개구리들이 울었다. 내가 가까이 가면 개구리들이 울음을 멈추었다.
퐁당, 길가에 있던 개구리가 논 속의 물로 뛰어드는 순간, 나는 그 소리에 놀란 적도 있었다. 황홀했던가. 여름이면 개구리 대신 풀벌레들이 울었다. 여치며 쓰르라미며 귀뚜리들이었다. 그렇게 찌르르 찌르르 울음 울다 내가 가까이 가면 일제히 그 울음을 멈추었다.
새벽산은 늘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 정적 고요에 스며든다고 할까, 숨어든다고나 할까. 나는 그렇게 아침이 오는 새벽미망 속을 걷곤했다. 폭염으로 낮에는 꼼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랬다. 새벽길을 걷다 보면 비밀리에 사랑을 하는 거 같았다. 마냥 한없이 걷다 돌아오는 거였다. 상여바위를 지나고 벌말을 지나고 송정 저수지를 돌아오면 아침해가 떠오른곤 했다.
여명에 마음을 내다 널은 산, 미명 속을 걷다보면 선계(仙界)에 빠진 듯 하기도 했다. 저수지에 물안개 피어오르고 물닭이며 청둥오리들이 퍼드득 허공으로 날아오를 때면 놀라기도 하지만.
올해는 기후위기로 유난한 장마가 지나갔다. 극한 호우로 비피해를 입히더니 이번에는 폭염이었다. 그래도 가겠지, 하며 이제 여름이 가면 투둑투둑 도토리와 밤이 떨어지겠지, 해보는데도 더웠다.
절로 돌아오는데 절마당에 낯선 차 하나가 보였다.
누구지?, 하며 내 방으로 들어가 씻으려 하는데 법당 오른쪽에 있는 내 방으로 올라가려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법당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거였다. 그냥 흐느껴 우는 정도가 아니라 그 무엇이 북받치는지 펑펑 울어대는 거였다.
나 때문인가, 그럴 리는 없었다. 원리원칙에 고집이 엄청 세고 자존심이 보통 강한 내가 아니었던가. 거기다 빡빡머리라 주변머리가 없었다.
울음소리는 사뭇 서러웠다.
이 새벽에 왜 울지? 부모를 잃은 걸까? 사랑하는 이가 죽었나? 사업이 망했나? 천애절벽에 선 듯 한 그 울음소리가 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울음에 방해될까봐 살금살금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 나는 이제 울음도 잃어버렸구나, 하는 구겨진 탄식을 삼켰다.
헤아려보니 나이가 들자 고리타분해진 거였다.
땀에 찬 몸을 씻는데 개운치 않았다. 몸을 씻고 평상시 같으면 공양간으로 가 차를 한 잔 마셨을 터인데, 울던 이가 나를 보고 머쓱해 할까봐, 갇혀 있는 듯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내가 저렇게 울어본 게 언제였던가. 이제 나는 다 된 건가? 울고싶어라, 왜 우니? 하던 노래도 떠올렸다.
돌아보면 온갖 괴로움과 고통은 다 사고팔고 (四苦八苦)였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만한 고통이 어디 있으랴.
그 사고팔고라 함은 생노병사의 네 가지 고통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원수와의 만남, 구하여도 얻지 못함, ‘오온(五蘊)’이 너무 성함의 네 가지 고통을 더한 여덟 가지의 괴로움을 이른다.
그래도 희로애락 애오욕의 강을 잘 건너 제법 잘 살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울음을 잃어버린 날들, 그때 진도견 믹스 보리가 짖지를 않는 거였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보리랑도 친한 모양이었다.
울음을 추스리고 나가는 모양이다. 나는 가슴에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울다 가는 이의 하루가 따숩기를 바랬다. 이제 다 울었을 터이니 잘 살기를. 하다
이윽고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방 안으로 들려왔다. 보리가 나 대신 울다 가는 이를 배웅해 주는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엔 뭘 먹나? 하며 흰 색 그랜져 차 한 대가 절을 내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다 그만 번뜩 정신이 든 거였다.
그 옛날, 까까머리에 먹물 옷을 입고 당신 앞에 서 있던 나를 보고 폭포수 같이 울던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때, 나는 두 팔을 벌렸고 어머니는 이놈의 자슥아, 아이고 이를 어떡해, 하며 끌어 안은 채 울음을 펑펑 쏟아내시던 당신이었다.
밥통에 밥이 없을텐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는 거 앞에 두면 초라하고 비굴해질 때가 있다. 그나저나 이놈의 차안(此岸)을 언제 넘어 저 피안(彼岸)으로 건너갈꼬, 하는데.
어느새 그 폭포수 같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아침은 뭘 먹나? 하는데 오늘 따라 내가 왜 이리 싫어지는지. 그렇게 내가 큼큼 헛기침을 큼큼거리자 힐끔 내 눈치를 보던 진도견 믹스 백구보리 보살이 다가와 밥 달라고 배고프다고 고개를 치미는 새벽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