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은 키가 작고 몸이 호리호리한 이색 도둑놈이었다. 그를 만난 건 교도소에서였다. 문화재 도굴 또는 가정의 골동품 및 고찰의 복장 이나 탱화를 훔치는 전문 문화재 상습 절취범이라 했다.

"스님, 천수경과 반야심경 법성게를 외우면 안경을 하나 해줄 수 있으세요?"

"내가 왜?"

"스님게 자비공덕을 베푸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크으......."

안경이 깨졌는데 노모 뿐이라서 면회 올 이가 없다는 거였다.

그랬다. 처음 내가 교도소로 첫걸음을 띄게 된 건 능인스님 때문이었다.

"스님, 내가 약속이 잡혀서 그러니 땜빵 좀 부탁해요."

90년대 초였다. 대신 교도소 법회를 집전해 달라는 거였다. 그쯤 나는 오고 갈 곳이 없어 빌빌 댈 때였다.

기억에 능인스님은 일본에까지 유학을 갔다 온 불교계 인재였지만 그 어떤 인연으로 환속한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이야 교도소 법회는 포교사들이 담당하지만 그때는 스님들이나 신도들이 법회를 봉행했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고 오히려 쵸코파이나 떡을 해 가야 하기에 돈이 들어가니 봉사활동을 하는 스님들은 몇 되지 않았다. 하여튼 그런 인연으로 나는 교도소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교도소 법회를 집전하다보니 왠만한 빵잽이들은 죄명과 형량을 알 수 있었다. 공동묘지에 가면 다들 죽은 사연이 다르듯 죄명은 각기 달랐다. 교도소 수용자들의 복장색깔과 명찰로 구분이 되었다.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봄 가을에 카키색을 입고 있으면 미결수 이고 회색을 입고 있으면 기결수다. 기결수들 중 어두운 바다색, 녹색을 입은 남자들이나, 여자들은 보랏색을 입는데 그건 모범수들이다.

언젠가 교도소 수용자들, 정의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되면 리얼리티 면에서 도움이 되겠다고 유심히 빵잽이들을 관찰했었다.

명찰로도 구분이 된다. 빨간 색은 사형수다. 파란 색은 마약범죄자들이고 노란 색은 조폭들이나 문제가 있는 관심대상 수용자들이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간첩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은 분홍색 명찰을 달기도 했다.

"제가 스님께 고려시대 금동 미륵반가사유상을 시주할 게요."

"........뭐?"

"스님은 이제 저를 만난 걸 행운으로 아세요. 팔자 고치시게 될 거예요."

"....크으.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니 치킨 좀 사주십시오. 실은 지금 제가 개털이라서 우리 방 식구들에게 매번 얻어먹기만 해서요."

들어보니 사연이 딱했다.

안경에 이어 이번에는 치킨이 먹고 싶다는 거였다. 마침 눈먼 보살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었다.

그리고 나서 황당함에 나는 혼자 낄낄대고 웃었다.

불사를 한다 했지만 불사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글도 되지 않고 무색무취한 내 삶을 즐겁게 해 준 값으로 나는 그날 교도소 법회를 나오며 흔쾌이 치킨 값을 넉넉히 영치금으로 넣어 주었다.

한 오 년 수용자들을 보니 관상만 봐도 저 놈은 절도범, 저건 폭행, 사기범인지 알 수 있었다.

범죄도 참 가지가지였다. 폭행, 상해, 음주운전, 교통사고, 살인, 화재, 강도, 강간, 도난, 아동 학대, 가정폭력 등 어떤 유형이든 법률에 따라 기소되고 재판을 받아 형량이 확정된 이들이 수용된 곳이었다.

수형자들을 만나보면 안타까웠다. 헛되고 헛되거늘 범죄에 대한 참회와 반성보다 자기는 변호사를 쓸 수 없었기에 형량이 비싸게 떨어진 거고 다들 그날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했다

"저는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부자가 될 거예요"

"왜? 또?"

놈은 나를 보기만 하면 싱글싱글 웃었다.

"도둑질 해 놓은 것들을 잔뜩 숨겨 놓았으니까요."

"크으......."

주위에는 도굴꾼과 중간상인, 골동품상 들이 자기 주위에는 끼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 관해 나는 잊었다. 외부활동을 접고 장편소설 미륵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났을까, 하루는 택배가 왔다. 박스는 그리 그리 크지 않았다.

"택배를 시키지 않았는데 누가 보냈을까?"

박스를 열었을 때 입이 딱 벌어졌다.

작은 보살상으로 높이 17.5㎝ 정도 되었다. 금동미륵 반가사유상이었다. 순간 그 도둑놈이 생각났다. 보낸 이의 주소고 전화번호도 없었다.


"스님이 좋아하시는 장길산이나 임꺽정, 홍길동도 따지고 보면 다 도둑놈들이에요."

푸하하하. 그렇게 놈은 가끔 나를 파안대소하게 했었다. '이제 손 씻고 메끼, 빠오, 도금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정진하고 있어요.'라는 편지도 들어있었다.

작은 불상은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오랫동안 흙 속에서 침식된 흔적이 뚜렷했다. 법의(法衣)는 한쪽 어깨만을 덮는 편단우견(偏袒右肩),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형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합장배례했다.

머리에는 산 모양의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었으며 고개를 약간 숙여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자비로웠다. 얼굴은 네모난 형으로 눈을 반쯤 감고 있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났다. 상체에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아서 잘록한 허리가 그대로 드러나며, 하체에는 무릎 위쪽부터 선으로 새긴 주름의 형태만 간략히 묘사하다가 흘러내리듯 대좌(臺座)를 덮으면서 자연스럽게 늘어져 여러 겹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아, 눈부셔라."

보면 볼수록 경이로웠다. 내가 미륵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데 이런 인연이라니. 황홀하기까지 했다.

진품같았다. 이 불상이 고려시대 것으로 진품이라면 그 값을 매길 수 없을 거였다.

"이걸 몰래 팔아 그놈 말대로 진짜 팔자를 고쳐봐?"

로또에 맞은 듯 했다. 암자로 올라오는 도로 포장도 하고 법당 지붕도 올리고 불사가 수월하겠다며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도 하고 인도도 다시 한번 가, 하며 번뇌망상이 파도를 쳤다.

연꽃무늬 대좌 위에 왼발을 내려 놓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은 채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 오른쪽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에 대고 있는데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떨렸다.

전체적으로 얼굴이 큰 편이었다. 그러나 가냘픈 몸매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생각에 잠긴 보살이 은은한 미소로 나를 건네보는 거였다.

"그것 참."

내 방 책상 위의 책꽂이에 두었다.

어쩌다 외출을 할 때면 여간 신경이 씌이는 게 아니었다.

"누가 집어 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여 다시 뽁뽁이에 싸 박스에 넣고 걸망 한쪽에 넣고 불상과 함께 외출을 한 거였다.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어이가 없었다.

불상이 내게 오기 전에는 참 평화로웠다. 꾸준히 예불도 열심히 하고 소설도 썼으며 일과가 평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반가사유상, 작은 불상 하나 때문에 내 마음이 그렇게 흔들렸던 거였다.

"참으로 내가 어이없고 가소롭군."

하여 대학 후배 중에 문화재청의 학예관으로 근무하는 이가 있어 그 불상을 의뢰했다. 만일 문화재급이라면 박물관에서 보관하라며. 택배로 보냈더니 탄소측정을 하려면 보름 쯤 걸린다고 했다.

그 미륵님이 그윽히 나를 보고 그윽히 미소짓는 거 같았다.

"보물들은?"

궁금해 했는데 편지가 들어 있었다. 경기도 이매산에 훔친 그림들, 보물 보석들을 숨겨놓았는데 출소 후 그 장소에 가보니 다 파헤쳐지고 아파트들이 떡 들어서 있더라고요."

"......."

<저 손 씼었어요. 지금은 메끼, 빠오. 도금하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있었을 때 감사했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어찌됐든 진품인지 가품인지 그 결과가 엄청 궁금했다.

"스님, 결과 나왔습니다."

"그래?"

"근현대 작품이에요."

"근현대라 하면?"

"1900년대부터 2000년까지를 얘기하죠. 가격으로 따지면 한 150만원 정도 할 거예요. 불상을 다시 스님 절로 택배 보냈어요."

그제야 나는 호리호리한데다 가끔 코를 큼큼대던 그놈을 떠올리며 웃음짓다 빡빡머리를 득득 긁었다. 가슴이 아릿해지기까지 했다. 그래 이런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하다니. 나의 도가 이거 밖에 되지 않냐? 하는 실망감에.

혹시 진품이면 어쩌나, 했던 나의 속물근성. 그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들. 미친놈처럼 그만 푸하하하 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느덧 삼십 년도 더 지난 얘기다.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몸도 마음도 쓰다 갈 인생이거늘.

그래, 지금 그 불상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때 법당 부처님 모실 때 부처님 복장 안에 넣었다. 지금도 가끔 책장을 바라보면 미륵님이 나를 건네보고 연신 '아이고 이 땡땡아, 땡중놈아! 정신차려라' 하시며 경책하시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