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 노스님을 찾아갔었다.

"그래, 화두는 성성하나?"

"번뇌망상을 도반 삼아 살고 있습니다."

"미친 놈."

일언지하의 그 말씀을 듣고 멍청해졌다.

스님은 내가 소설 쓰는 걸 못마땅해 하시곤 했다. 젊은 날, 숨이 가빠왔다. 앞만 보고 내달렸던 나는 목도 마르고 가슴은 먹먹하기만 했다.

"나무 기둥을 키워야지."

순간, 가슴속에 막혀있던 그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곁 가지가 성해야 나무 기둥도 굵어지죠."

그래도 조금 더 팅겨 보았다.

"지랄, 으이그 이 꼴통, 또라이 새끼."

나는 그만 한 방에 깨지고 말았다.

화두가 있는가? 그 화두를 갖은 사람들의 지경, 경계의 지점을 우리는 경계라 한다. 화두가 있는 이들과 없는 이들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화두가 없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 화두가 있지만 모르는 경우가 거반이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화두는 상품, 그가 만들어내는 제품과 판매다. 연애를 하는 삶들의 화두는 사랑이다. 시인들이 화두는 그 시인들이 쓰는 詩요, 소설쟁이들은 완성된 소설이다. 월급쟁이들의 화두는 월급이다. 속가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화두는 거의 그렇듯 돈이요, 생활이요 행복이다.


산을 내려오는데 밤 한 알이 툭 떨어져 떼굴떼굴 굴렀다. 한동안 멈춰서서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밤나무가 나를 깨치게 해 주고 있었다.

밤나무도 밤 한 알에 매미소리와 추위와 배고픔이 들어 있을 거였다. 만남이 이별이 슬픔과 죽음, 그 번뇌망상들이 들어 있을 거였다.

젊었을 땐 틱틱거리던 노사가 얄미위 그 밤 한 알을 이빨로 아작아작 깨물어 먹었는데.

가을비 그친 오늘 새벽 산책 길에 밤 몇 알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싸, 하며 한 알 두 알 한 움큼 주웠다.

그랬다. 일흔이 다된 오늘 되돌아보면 머리가 총명하지 못했고 지혜롭지 못했으며 문장력도 약하고 끈기도 부족했다.

지금 나의 화두는 성성한가? 하며 얼마나 안개 속을 걸었을까.

門門一切境 回回不回互

문문일체경 회호불회호 문과 문, 일체의 경계여. 호직 회호와 불회호 이거늘.

새벽길엔 들국화 노랗게 피었다. 구절초는 보랗게 피고. 안개 속으로 다람쥐 한 마리 잽싸게 뛰어간다.

왜 상즉상입(相卽相入)하지 못했을까. 법이여연(法爾如然)하지 못하고. 그랬다면 日用光中, 일상생활에 빛들이 찬란했으련만.

우뚝 걸음을 멈추고 주웠던 밤들을 한 알 두알 숲으로 휙휙 던졌다. 너도 이 세상 나왔으니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야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