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에는 바람과 파도가 쳤다. 건너고 싶은 바다가 이 가을바다야? 내가 나에게 물었다. 가을 바다는 온통 무상함 뿐이었다.
나뭇잎들이 모두 잎에 불을 매단 거 같았다.
그랬다. 나무들 비탈에 서서 올해도 쓰러지지 않고 잘 서있다. 비탈에 선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잎으로 도대체 무슨 말을 전하는 걸까.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들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법당 앞 마당으로 떨어진 나뭇일들이 요이 땅, 하며 내달리고 기도를 마치고 나온 나는 법당 앞 계단에 앉아 멀리 저수지에 비치는 윤슬을 보았다.
지난 밤에는 자다 깼다. 숨도 가빠오고 가슴이 무거웠다. 귀뚜라미 여치 우는 소리가 창자를 끊는 것 같았다. 잠 하나만은 끝내주게 잘 잤는데 자다가 깨는 날이 많다.
"얘들아 우지 마라."
혼잣말을 했다. 중얼거리는 횟수가 늘어난다.
살아있었던가. 사랑했던가. 기쁜 날도 있었고 슬픈 날들도 있었다. 멍청하게 바라보니 온통 가을이 그림같다.
올해는 유난히 가을을 타는 거 같다.
입안이 깔깔하다. 침을 목으로 넘기는데 편도선이 부은 거 같다. 평생 무명이었고 아마츄어적인 삶을 살았다. 어리석었던 탓이리라. 잘 살아보려고 한 짓들이었다. 농사욕심이 많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어 그저 누가 되지 않게 성실하게 살자, 앞만 보고 가자, 했던 날들이었다. 글을 쓴다고 십 년, 불사를 한다고 십 년. 인력에 나가 벽돌을 쌓는 조적공으로 또 미장공으로 개잡부로 비승비속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보일듯 보이지 않았고 들릴듯 들리지 않았다.
"누가 널더러 이 길을 가라했어?
선배들이 물었다.
"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어요."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숟가락이 밥맛을 모르듯이. 무위도식. 허송세월만 보냈다. 평생 무명이었고 아마츄어적인 삶을 살았다. 몸이 고달파 그렇지 그래도 먹거리는 늘 풍성했다. 이제 나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그래도 세상을 희망하며 살았다. 사랑으로 평화로 만나고 나누며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렇다 수행자라 해도 허무한 건 똑 같다. 이제 좀 살만하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갈 곳은 딱 하나다. 어쩔 수 없는 일. 그렇다고 뉘우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살았으면 된 거다. 그렇게 번뇌란 번뇌 모두 함께 끊지 못했지만 같이 살았으면 된 거다.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고 살았다. 치열하게 살았으면 된 거다.
봄 여름이 후딱 지나갔다. 가을이 어느새 왔나 했는데 금세 가고 있다. 서리가 내렸다. 서리를 맞은 풀잎들이 폭싹했다. 거무죽죽하다. 이제 달력도 두 장 밖에 남지 않았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았다. 그럼 됐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더 추울 일만 남았다. 가을 산, 가을의 바다. 이제 겨울 바다가 되겠지. 올 해는 또 눈이 얼마나 오려나. 날씨야. 추워봐라 내 얼마나 추운지 방에 불 뜨끈 때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