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어릴 적, 아궁이 앞에서 노스님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거지에게 "너 따스한 밥을 먹고 잘래? 아님 저녁은 굶고 따스한 방에 잘래?" 묻는다면 거지는 따스한 방에서 잔다, 대답한다는 거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 못 했다. 과연 그럴까? 절간이나 속가나 너나 없이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절이었다.

정진하되, 등을 따뜻하게 하고 지내라, 하고 노스님이 말했다, 했다. 배를 자주 문질러 주고 얼굴을 자주 만지라 했다. 두드려 주기도 하고 항문에 힘을 줬다, 뺐다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또 윗니와 아랫니를 가볍게 마주쳐 소리가 나게 하고 귓불을 자주 만져 주라시던 노스님의 말을 전하자, 명절 때 왔던 상좌 놈들은 '이제라도 스님 그렇게 좀 건강 챙기시며 사세요'하는 거였다.

칠년 전, 큰 상좌 놈이 보일러를 놓아준다, 하길래 기왕이면 내 방은 불을 땔 수도 있게 해 달라 했다. 보일러를 놓기 전에는 나도 산중에서 나무 하는 일은 하루 중 큰 일과였다. 놈은 나무 하는 일이 고역이었고 했다. 내 말에 놈은 업자와 상의해 액셀 관을 쓰지 않고 연질 동파이프 관을 써 지금도 가끔 나는 내 방에 불을 때고 자는 날이 있다. 그때, 놈은 꽤나 궁시렁거렸다. 그 바람에 비용이 꽤 들었는데 "기왕 해 줄 거면 그렇게 해줘"하고 내가 떼를 쓰길 참 잘 했다고 몇 번이나 나를 칭찬했는지 모른다.

산중생활 중 아궁이 앞에 앉는 시간은 거의가 하루를 마감하는 때였다. 내가 나와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휴식과 함께 재충전이 되는 시간이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잠시 쉬며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곤 했다. 하루 일과 중 내가 사랑하던 시간으로 평화롭다.

불 때는 아궁이 앞에 앉으면 꼭 마음의 문턱 앞에 앉는 거 같다. 그렇게 아궁이 앞에 앉으면 편안해 졌다.

불때기는 산중생활의 특권이었다. 상좌들에게 "나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니 너희들에게 물려줄 거라고는 나의 성실함, 근면함 밖에 없다." 했더니 상좌놈들은 인정을 하면서도 쓰게 웃곤 했다. 내가 극성이었나? 그랬다. 그 부지런함으로 오늘의 평안함이 있는 거 같다. 내가 찾고 사랑하던, 내가 추구하던 행복은 절깐에 다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길. 어디까지 갔다왔나? 지옥 문턱까지 까지 갔다왔지만.

깔판을 깔고 앉아 불을 땔 때, 맨 처음 하는 일은 아궁이에 나무를 쟁여 넣은 일이다. 불구멍을 만들어 놓고 장작을 오무린 우물 정(井)자로 쌓는다. 그런 다음에 성냥을 그어 불을 지핀다.

불꽃 하나. 내 마음은 마른 가지가 되어 타오른다. 불을 피우다 보면 꼭 우리네 인생과 같다. 긴 팔 두꺼운 옷 꺼내 입고 깔판을 깔고 앉아 아궁이 앞에 앉으면 불을 만나고 스며든 불과 함께 멍때리게 된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지난 봄에 쓰던 불막대기, 봄에 쓰던 아궁이 옆에 세워둔 부지깽이를 들고 있었던 거다.

피식 웃었다. 아궁이는 나의 생명처이기도 했고 창작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불은 물 불 흙 바람과 함께 불교에서는 四大라 한다.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로 우리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작은 불꽃 하나로 큰 불을 일으킨다. 불은 꽃을 피우며 타오르며 노래를 부른다. 오랜만 인지라 불 때는 아궁이가 불을 잘 먹지 않는다. 연기만 피어오른다. 어쭈구리, 하고 바람을 불어 넣는다.

여자하고 불은 쏘삭거리면 꺼진다 했던가? 하다 장작을 들춰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잔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채곡채곡 쌓았다. 불쏘시개를 만든다.. 잔 나뭇가지나 장작 얇은 것들, 작은 불심이 근 불심을 만드는 거였다. 그랬다. 불심으로 살아온 날들이었다.

기어코 밑불을 키웠다. 발화, 점화라고 한다. 불을 할딱이게 만드는 것이다. 불들이 엉겨붙자, 불은 빨갛게 혹은 주황으로 검게 파르스르하게 타오른다.

순간 동작을 멈추고 손에 쥐고 있던 부지깽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부지깽이 같은 인생이었다. 처음엔 제법 길었다. 청춘의 그 열정의 세월이 갈수록 적어졌다. 그러다 나중엔 불 속으로 던져지고. 꼭 내 처지같다.


요즘 아이들은 부지깽이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거두어 넣거나 끌어내는 데 쓰이는 가느다란 막대기다.

타닥타닥, 불이 내는 소리는 무섭다. 불은 힘이 세다. 허공에 불꽃을 만들며 만물을 無로 空으로 만든다.

불기운이 얼굴에 닿아온다. 그 가벼운 촉감이 너무 좋다.

삼계화택. 누가 이 사바세상을 화택(火宅), 불이 일어난 집이라 했던가. 불가에서, 번뇌와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타구니께가 따스해진다. 가마솥에는 물이 잔뜩 담겨 있다. 가마솥에 물을 붓지 않고 불을 때면 가마솥이 깨진다. 겨울이면 보일러를 놓기 전에는 그렇게 물을 덥혀 공양간에서 큰 통에 데운 물로 빨래도 하고 목욕을 하곤 했다. 서서히 물이 끓고 김이 솥에서 새어 나온다.

으실으실했던 몸이 따스해지자 솥에다 옥수수 삶으면 맛 있는데, 하다 밤이나 고구마가 생각난다. 이글이글 핀 숯덩이, 불덩이들을 잉걸불이라 한다. 그 잉걸불들을 앞으로 끌어당겨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불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아픔도 슬픔도 까맣게 잊는다. 멍하니 불을 바라본다. 불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긴 하지만 어찌보면 불은 무섭다. 온 존재를 다 받아드리고 통째로 재로 만든다. 나도 저렇게 타겠지.

젊은 날의 욕망, 갈망 같다고나 할까. 몸과 마음을 맞대고 타오른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건 핑계였다. 어리석으니 집착과 욕심을 냈던 게 아닌가.

불 땔 때마다 나는 꼭 나를 다비하는 거 같다. 불속으로 기쁨도 슬픔도 던진다.

다비식에서 거화, "스님, 불 들어가요....." 라는 말이다. 다비(茶毘) 할 때 쓰는 말이다. 불 속으로 온갖 번뇌들 무상, 고, 무아를 던진다. 업도 과보도 던진다. 존재하는 죄, 살아있는 죄도 던졌다.

다비란 화장(火葬)과 같은 말이다. 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죽은 이의 시신을 불에 태워 그 유골을 거두는 불교의 장례 방법이다. 교수형이나 참수형, 거열형도 아니고 나를 화형으로 집행하는 것이다.

이 정도 장작을 넣으면 방은 절절 끓을 것이다.

불 속으로 사랑도 던지고 달마도 던지고 부처도 던진다. 츰부츰부 츰츰부... 부지깽이를 잡고 바닥을 두드려 부지깽이 장단으로 염불을 흥얼거려본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산 삶이었다.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아쉬움이랄까 회한이랄까 뭐 그런 거 는 없다.

이번 생, 황홀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사느라 바쁘기만 했을 뿐이다. 내 죽거들랑 장례식 같은 건 치르지 말라했다.

상좌들이 가지 않고 남았다면 부지깽이로 아궁이 앞으로 불을 끌어당겨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주었을 것이다.

혼자가 된 나는 차츰 뒤엉키는 불을 아궁이 깊숙히 밀어 넣고 불문을 닫아버린다. 공양간을 나오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작은 놈의 말대로 라면 내가 아프지 않고 살아있는 게 자기들에겐 자비요 사랑이라는 거다.

비가 잦은 가을이다. 그러면 내일은 그럼 밤 밥을 해 먹어볼까.

이슬비가 내린다. 우산도 쓰지 않고 산보길을 나선다. 가슴이 콩콩 뛰지도 않는다. 남은 생 기대감과 설렘도 없다. 아낌없이 살았다.

그래도 가보자, 하는데 그때 산책길을 쭐레쭐레 앞서 나가던 보리가 힐끗 뒤돌아 서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가다가 뒤돌아 보며 다시 합장구벅하던 막내 상좌놈의 "괜찮죠? 혼자 계실 수 있죠?" 하는 눈빛이다. 나는 입가에 씩 웃음을 물고 "괜찮다."며 보리에게 어서 앞서 가라고 손짓하는데 길가의 구절초들이 함박 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