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인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명저로 꼽혀온 『일본백명산』의 한국어판이 반세기 만에 초역되어 나왔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서 ‘일본백명산’을 치면 731건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그만큼 유명하며 ‘무슨 무슨 백명산’이란 이름을 붙이는 유행의 원조다. 이 책은 1964년 7월에 출판되었고 이제는 저자마저 누구였는지 희미해져서, 사람들 대부분은 백명산 투어를 기획하는 여행사가 사전에 나눠준 자료로만 대강의 정보를 얻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후카다 규야의 『일본백명산』이라고 불러야 한다.

반면 전문 산악인, 등산애호가 사이에서 『일본백명산』은 자신의 경험이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권위의 표준이다. 즉 백명산이라는 말은 일본 내 등산 관련 거의 모든 콘텐츠의 해시태그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들의 커뮤니티나 블로그에서 『일본백명산』을 몇 줄 인용하지 않는 법이 없다. 또한 백명산이 속한 지역의 홍보나 지역 연구자들의 보고서며 논문, 심지어 지역 사회의 단체와 관계된 것에서도 빠트리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등산 전후에 머물렀던 숙소는 말할 것도 없고 지도나 안내 책자, 투어 프로그램 등 파생 상품도 마찬가지다.

많은 평론가의 붓을 빌려 일반적으로 ‘산의 바이블’로 표현되는 이 『일본백명산』은 저자가 산의 품격, 산의 역사, 산의 개성, 1500미터 이상의 높이 등을 기준으로 뽑은 일본 전역 100곳의 산에 대한 수필이다. 산명고山名考라는 형식 속에 일본의 등산사와 문학을 언급하면서 일본의 다양한 전통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한 산은 발행으로부터 60년, 저자의 등산 활동으로부터는 100년이라는 시차가 있어서 오늘날 어지간한 산에는 로프웨이가 달려 있고, 산머리의 턱밑까지 자동차도로가 나 있어서 산의 영혼이 머물 곳이 사라진 듯한 모습도 보인다.

호황기를 누리던 당시 산록에 들어섰던 시설은 이제 폐허로 변한 곳도 많다. 다시 말해 당시에 그 산이 지녔던 경관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이 책으로 한가했던 옛 일본백명산의 가이드북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그래도 실제로 이곳을 여행하거나 등산할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용한 참고가 될 것이며, 일본 문화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덤으로 접하게 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저자에게 직접 듣는 백명산 선정 배경

일본은 산의 나라다. 어디를 가도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 시정촌市町村을 굽어보는 잘생긴 산이 서 있어서, 그곳 학교의 교가에 반드시 넣고 있는 분위기이다. 일본 국민은 대개 산을 보며 자랐다. 도쿄 정도가 산에서 멀지만 매연이 적었던 과거에는 후지산이며 쓰쿠바산이 도시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 책에서 꼽았던 백 곳의 명산은 전부 저자가 그 정상에 섰던 산이다. 백을 골라야 하는 이상, 그 몇 배의 산에 올라봐야만 했다.

100개의 산 선정에 있어서 저자는 우선 세 가지 기준을 두었다.

첫 번째는 산의 품격이다. 누가 보더라도 훌륭한 산이라고 감탄하는 것이어야 한다. 높이에서는 합격했어도 범상한 산은 고르지 않는다. 험준함이나 굳셈, 아름다움이랄까,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두드려 오는 점이 없는 산은 고르지 않는다. 사람에도 인품의 고하가 있듯이 산에도 그것이 있다. 인격이 아닌 산격이 있는 산이어야 한다.

두 번째로, 저자는 산의 역사를 존중한다고 말한다. 예로부터 인간과 깊이 유대를 지닌 산을 제외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조석으로 우러르고 공경해서 그 꼭대기에 호코라祠를 모실 만한 산은 저절로 명산의 자격을 지니고 있다. 산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다만 근년의 이상한 관광업의 발달은 오랜 내력이 있는 이름난 산을 통속화시켜, 어느덧 산의 영혼도 머물 곳이 사라졌다. 그런 산을 고를 수는 없다.

세 번째는 개성이 있는 산이다. 개성이 현저한 것이 주목받는 것은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다. 그 형체이든, 현상現象 내지는 전통이든, 다른 곳에 없는 그 산만이 갖추고 있는 독자적인 것, 그것을 저자는 존중한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산은 고르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산은 같은 모양이 아니고 각각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 강렬한 개성이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부가적 조건으로서 대략 1500미터 이상이라는 선을 그었다. 산이 높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높이가 아니면 저자가 목표로 하는 산의 카테고리에 들 수 없다. 예를 들어 에치고의 야히코야마, 교토의 히에이잔比叡山, 분고의 히코산英彥山 등은 예로부터 이름난 명산임에 틀림없지만 너무나 키가 작다. 예외는 있다. 쓰쿠바산과 가이몬다케. 그것을 고른 이유는 저자가 본문에 적어놓았다.

구체적으로 볼 때, 홋카이도에서는 9좌를 들었지만 그 밖에도 우페페산케ウペペサンケ, 니페소쓰ニペソツ, 이시카리다케石狩岳, 페테가리ペテガリ, 아시베쓰다케芦別岳, 고마가타케, 다루마에산樽前山 등은 유력한 후보였다. 다만 저자가 그 산들을 바라보았을 뿐, 실제로 오르지 않았다는 불공평한 이유로 제외되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도호쿠 지방에서는 아키타코마가타케秋田駒ヶ岳와 구리코마야마栗駒山를 넣었어야 마땅했을 수도 있다. 모리요시잔森吉山, 히메카미산, 후나가타야마舟形山 등은 좋은 산이건만, 조금 키가 부족하다.

저자가 가장 망설였던 것은 조신에쓰였다. 이곳에는 높이에서 제1급은 아니지만 제2급이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모두 저자가 좋아하는 산이다. 뇨호산, 센노쿠라야마仙ノ倉山, 구로히메야마黑姬山, 이이즈나야마飯繩山, 스몬야마守門山, 아라사와다케荒澤岳, 시라스나야마白砂山, 도리카부토야마鳥甲山, 이와스게야마, 그 밖에 백명산 안에 들어와도 조금도 손색없는 산이 많이 있다.

사람들은 후쿠다 규야에게 어느 산이 가장 좋으냐고 곧잘 물어본다.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산이다. 그 산의 인상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에서 예로 들었던 산도 만약 내가 그곳에서 막 돌아왔더라면 당연히 백명산에 넣었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 알프스의 산들이 백명산 안에 사분의 일 이상 차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슈의 등뼈를 이루는 이곳은 눈에 띄는 것만 헤아려도 금세 서른을 넘겨 버린다. 그중에서의 선택도 저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당연히 꼽았어야 할 산으로는 유키쿠라다케, 오쿠다이니치다케奧大日岳, 하리노키다케針ノ木岳, 렌게다케蓮華岳, 쓰바쿠로다케, 오텐조다케, 가스미자와다케霞澤岳, 아리아케야마有明山, 가키다케, 게카치다케毛勝岳 등이 있었다. 남쪽에서는 다이무겐야마, 자루가타케笊ヶ岳, 시치멘산七面山도 넣고 싶었다.

호쿠리쿠에서는 하쿠산 산맥의 오이즈루가타케笈ヶ岳나 오가사야마大笠山를 꼭 넣을 작정이었다. 이는 저자 고향의 산이라서 편드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숨겨진 훌륭한 산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퍼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등정할 기회를 가지지 못해서 유감스럽지만 생략했다고 밝힌다.

간사이에서 골랐던 이부키야마, 오다이가하라야마, 오미네산 이 외에도 예로부터 이름난 스즈카야마鈴鹿山나 히라산比良山을 넣고 싶었다. 스즈카야마에는 세 번 갔다. 하지만 고자이쇼다케御在所岳는 이미 유원지가 되어 있었고, 후지와라다케藤原岳에 올라 스즈카의 산들을 바라봤지만 무엇 하나 높이가 없는 점이 저자를 주저하게 했다.

주고쿠는 고산이 부족하다. 호키 다이센에 올랐던 날은 더없이 드맑은 가을날이었고, 그 정상에서 나는 산요와 산인을 가르는 척량산맥을 바라보았다. 나의 기대는 어딘가에 이렇다 할 산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겹이나 이어진 산들은 모두 하나같이 평평한 구릉이라,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다. 히루젠蒜山에도 들러 봤지만 명산으로서 추천하기에 어딘가 부족했다.

다시 서쪽으로 가서 산베산에 올랐다. 그곳에서 이번에는 니시추고쿠西中國의 산들을 바라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명산을 찾아다니는 일은 보람 없이 끝났다. 이렇게 해서 주고쿠에서는 다이센 하나가 되었다. 만일 따로 꼽으려고 한다면 효노센일지도 모르겠다.

시코쿠에서 이시즈치산과 쓰루기산이라는 2좌는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규슈는 6좌를 골랐는데, 그 밖에 유후산由布山, 이치후사야마市房山, 사쿠라지마산을 염두에 뒀었다. 모두 개성 있는 멋진 산이다.

번역 배경과 주요 고려사항들

역자가 속했던 모임에서 뒤풀이 자리면 종종 화제로 삼는 일본 등산가들이 있었다. 주로 김영도金永棹(1924~2023) 선생께서 말문을 열어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본문에 등장하는 고구레 리타로, 다나베 주지, 오시마 료키치, 그리고 권말에 이 책의 해설을 쓴 구시다 마고이치 같은 분들이었고 후카다 규야 선생도 단골이었다. 모두 그들의 저작과 함께 짝지어서 등장했다. 대개 극단적인 말로 고전은 누구나 들어는 봤지만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일본백명산』도 예외일 수는 없었고, 모두 그 어떤 책보다도 내용을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김영도 선생은 1970년에 시작된 전국 35개소 산장 건설을 주도했고, 한국인으로는 고상돈 씨가 초등한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장, 1978년의 북극 탐험대장 등을 지냈다. 이후 한국등산연구소를 설립해 구미의 여러 등산서를 번역하고 등산사를 연구했다. 어느 날 역자는 김영도 선생에게 걸작으로 꼽는 일본의 산서는 무엇이냐고 여쭌 적이 있었다. “『일본백명산』이 그 백미”라는 대답을 듣고 역자는 “그럼 선생님이 번역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말맛을 내기가 워낙에 어려운 책이라서……”라는 게 당시의 답이었다. 시간이 지나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역자와 같은 모임의 김진덕金珍德 씨가 작은 모임을 만들어서 일본의 산서를 읽어보자는 제안을 하곤 했다.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 『일본백명산』만큼 영향을 미친 책은 다시없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아직도 『일본백명산』이 번역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역자 역시 우리나라에서 근대 이후의 등산사와 필연적 관련이 있는 일본의 등산사에 평소 관심이 많았고 홋카이도의 산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기에, 별 뜻 없이 『일본백명산』을 윤독해보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궁금했던 나머지 어쩌다가 번역을 역자가 맡기로 해서 일을 키웠다. 그렇다고 해서 역자가 일본에서의 등산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일본백명산』 앞부분에 등장하는 홋카이도의 산을 몇 편 번역한 후 몇몇 친구에게 나머지 내용이 궁금하다는 식의 호응을 얻지 못했더라면, 이내 완역 욕심이라는 망상을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번역 작업이 혼슈로 건너가자 일본 특유의 다양성의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산명고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일본 전국의 산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서 있어서 마치 팔도 사투리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작가 스스로가 편당 400자 원고지 5매라는 원칙을 잡고 썼기 때문에 이 책의 압축을 풀었을 때 그 방대함은 남달랐다.

가령 ‘아라시마다케’ 편에서 나오는 中出라는 지명이 있다. 이것은 다양하게 읽을 수 있지만, 해당 지역의 독법은 찾기가 어려웠고, 그렇다고 해서 얼버무리기도 싫어서, 역자는 직접 그 지역 일대의 도로 표지판을 뒤져본 결과 ‘나칸데’로 읽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책은 초판본을 기준으로 양장본 26센티미터의 길이에 해당 편마다 자그마한 지도와 사진 한 장의 도판을 실은 222페이지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을 다뤘다는 점에서 책에 등장하는 낯선 점들을 잘 살펴보고 설명하기로 했다. 본문의 역주는 다양한 견해의 일부라는 것을 전제로 달았다. 일본의 문화사는 예외적인 요소가 많아서 한 가지로 정의된 개념어로 해석하기 어렵고, 규칙성을 전제로 논리적인 구조를 갖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따라서 역주 또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당연히 모순되거나 부족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역자의 의견을 제외하고 전거가 없는 것은 되도록 인용하지 않았다. 도서와 논문을 참조한 것은 물론이고, 고도서는 일본 공공 도서관의 디지털 자료를 열람했다. 일본의 백과사전에서는 가능하면 집필자가 명기된 항목을, 방대한 자료가 있으나 잘못된 정보도 있는 일본 위키에서는 출전이 있는 부분만 확인 후 참고했다.

자연이나 자연 현상을 표현하기 위한 말은 일찍부터 나라마다 대개 고유어가 발달해 있었다. 다만 도시생활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옛사람들처럼 날씨의 추이나 지형의 변화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섬세하게 묘사할 일이 줄어들어서 그에 관한 표현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등산을 다루는 글에서는 빠트릴 수 없는 요소라 그와 관련된 잊힌 우리말을 먼저 수집해놓고 우리의 산과 일본의 산을 올라본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채택했다.

지형의 묘사와 관련된 부분의 확인을 위해서 여러 지도를 참조했는데, 상세한 일본국토지리원의 지리원지도(전자국토 Web)를 통해서는 전체적인 지형을 파악했고, 시판 조감도와 등산지도 등을 통해 어프로치

와 등산로, 실제 산의 형태, 주변 지형과의 관계, 시설이나 건조물의 존속 여부 등을 확인했다. 사진에 대해 말하고 싶다.

본문에 실은 사진의 선별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산의 특징을 담으려면 해당 산의 전용全容이 담긴 사진을 중심으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캡션으로 설명하려면 어디에서 바라보고 촬영한 것인지를 알아야 했다. 결국 해당 루트를 선택한 다른 등산자의 시선을 따라 눈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그저 지나치며 눈으로만 담기에는 아깝고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 많아서 새삼스럽게 저 말이 와 닿았다. 그러나 그러한 산의 표정들을 본문의 지면에 일일이 드러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모든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고르려고 했다. 하지만 필요한 자리마다 적절한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험난한 산을 오르면서도 결정적 장면을 포착하고 싶었을 촬영자의 의지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았을 아쉬웠던 순간에도 많이 공감했다. 따라서 당연하지만 분식한 사진도, 태가 나지 않는 사진도 더러 있어서 그것만으로 해당 산의 미추를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해당 산의 이런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는 겨우 몇 장의 사진이 명산에 대한 환상을 깨트릴 뿐만 아니라 그릇된 선입관을 심을까봐 망설였지만, 결국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역자가 골라 수록하게 되었다.

읽어서도 좋고 올라서도 좋은 산

역자는 서문을 마무리하며 말한다.

“이 책은 체력과 기술과 담력을 갖춘 소수의 일류 등산가를 유혹하는, 하지만 언제든지 내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산이 아니라, 숲 내음에 둘러싸여 새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산길을 거닐려는 사람들에게 속삭이듯 누구라도 어서 오시라고 하는 모두의 산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산에 가지 않더라도 일본 열도라는 긴 갤러리에 전시된 명산의 큐레이션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일본에 백명산이 있는 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하이킹을 떠나는 한, 계속 읽힐” 책이다.

■ 저자

지은이 | 후카다 규야 深田久彌
일본의 작가이자 쇼와 시대에 활동한 등산가다. 도쿄제1고교를 나오고 도쿄제국대학을 중퇴했으며 고바야시 히데오 등 문단의 인맥을 이 시기에 형성했다. 전쟁 전에는 등단 작가로 소설을 쓰고 편집자로도 활약했지만, 결혼과 이혼, 사생활과 표절 논란에 휘말리며 결국 낙향했다. 평판에 대해 일절 변명도 없이 후카다는 이 7년의 자복 기간에 산의 문학자로 전향하게 된다. 전쟁 후에는 산과 스키에 관한 수필로 유명해졌다. 산을 지극히 사랑했으며,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저서 『일본백명산』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옮긴이 | 강승혁
산길을 거니는 것을 좋아하는 도시인이다. 한국등산학교의 모든 정규과정을 마쳤으며 한국산서회의 이사를 지냈고 한국등산연구소의 연구 동인에 속해 있다. 일본의 등산과 관련한 에세이와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알파인 클라이머 야마노이 야스시의 『크로니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