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주역, 고전과 죽음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온 맹난자 원로 수필가가 4년 만에 신작 수필집『흰 연꽃의 눈』을 선보였다. '연꽃의 눈'은 "연꽃은 꽃과 열매를 동시에 품고 있는 화과동시(花果同時)"를 이르는 말이다. 연꽃이 피면서 그 안에 이미 흰 연밥을 함께 키운다는 이야기로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있다. 마치 임신한 여인의 태(胎) 속에 이미 죽음이 싹트고 있는 것처럼.
맹난자 수필가는「책을 펴내며」에서 "“여든네 번째 가을을 맞는다. 몸이 떠나기를 기다리며 묵은 곳간을 털었다. 여기 수록된 글들은 없어져도 무방할 그림자의 잔해. 양피지 위에 썼다가 지운, 그리고 다시 눌러쓴 글자들. 결국은 무(無)에 이르는 도정(道程)이었다"며 부쩍 약해진 몸과 건강 탓에 앞으로 더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
오늘 교보문고를 비롯해 전국 유명 서점에 배본되며 교보문고와 알라딘, 예스24 등 인터냇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양피지 위에 썼다가 지운, 다시 눌러쓴 ‘무(無)에 이르는 도정(道程)’
팔순 중반을 넘어선 한국 수필계의 원로 맹난자 수필가가 4년 만에 신작 수필집 『흰 연꽃의 눈』을 선보였다. 맹난자의 수필은 ‘영성수필’ ‘불교수필’이라는 한정된 카테고리에 종속시킬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넓고 크기에 한 평론가는 ‘맹난자수필’로 명명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맹난자 수필가는 「책을 펴내며」에서 “여든네 번째 가을을 맞는다. 몸이 떠나기를 기다리며 묵은 곳간을 털었다. 심연의 바닥에 두레박을 기울였으나 더는 퍼올릴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 수록된 글들은 없어져도 무방할 그림자의 잔해. 양피지 위에 썼다가 지운, 그리고 다시 눌러쓴 글자들. 결국은 무(無)에 이르는 도정(道程)이었다. 창밖 까마귀가 ‘가아 가아 가’라고 한다. 바람 따라 갈란다. 허수입(虛受入). 등 뒤에 와닿는 가을 햇살이 따스하다. 참 좋다”라며 부쩍 약해진 몸과 건강 탓에 앞으로 더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몰라 ‘묵은 곳간’을 털었다고 밝혔다.
수필집 제목으로 내세운 「흰 연꽃의 눈」은 2025년 9월에 쓴 최신작이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만년처럼, 요즘 나도 거실 창밖 유리문 안에 갇혀 지낸다. 계절의 순환을 그저 바깥 풍경에 의지해 느낀다. 기척 없던 나무에 연둣빛이 감돌더니 목련꽃이 만개했다. 생명으로 눈부신 봄, 우리 부부는 거실과 안방에서 불편한 호흡으로 이 봄을 건너고 있다. (…) 내가 해야 할 일은 90세의 환자를 선종(善終)으로 배웅하고, 이 몸도 낙화(洛花)하는 일”이라고 한 뒤, “고전과 『연화경』의 연꽃은 꽃과 열매를 동시에 품고 있는 화과동시(花果同時)다.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있다. 마치 임신한 여인의 태(胎) 속에 이미 죽음이 싹트고 있는 것처럼, 생과 사가 즉(卽)해 있다. 모양은 변했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라며 오래 전 주역(周易)을 가르쳐준 노석 유충엽 선생이 지어준 호는 관여(觀如)인데 “무슨 인연일까. 나의 어머니 이름은 김묘연(金妙蓮). 김구용 선생은 ‘백화시실(白華詩室)’ 주인의 당체시다. 관여 실상(實相)은 흰 연꽃의 눈, 그 이슬방울에서 생과 사의 즉(卽)을 본다. 나 이제 그만 공기(空氣) 속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라며 지금껏 삶은 “무(無)에 이르는 도정(道程)”을 결연히 밝히고 있다.
제1부 ‘글쓰기는 하나의 깨달음이다’에서는 표제작 이외에, 맹난자수필의 1차 화두는 ‘마음’이었고 2차 화두는 ‘죽음’이었던 수필 행로가 닿은 곳은 안심입명(安心立命), 작은 포구였음을 밝히는 「나의 수필 행로」, 마조 스님의 말씀대로 ‘한 생각 망심(妄心)이 곧 생사의 근본’이니 분별하고 간택하는 취사심을 멈출 것을 다짐하는 「마음 밖에 법이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하나의 깨달음’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대전제에 동참하게 된 이유를 밝힌 「글쓰기는 하나의 깨달음이다」 등을 읽을 수 있다.
제2부 ‘아름다움, 그 비의어를 생각하다’에서는 환갑 지나 정년퇴직한 남편과 함께한 해외여행 중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난 것은 샹젤리제 거리의 벽보에 모파상의 소설 『메종 텔리에』의 연극 포스터였고 그의 작품 속 결미는 늘 불행으로 끝나는데 그 “연민 속에서 비애를 자각(自覺)하는 인간이야말로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간이다”라고 깨닫는 「아름다움, 그 비의어를 생각하다」를 비롯, 평생 목에 걸린 가시처럼 화두로 들고 있던 단어인 ‘행복’이란 “오온(五蘊)이 빚어낸 우리 마음의 판타지(幻)가 아닐까”라는 「행복에 대하여」, 영국 시인 존 키츠의 ‘여기 이름을 물 위에 새긴 사람이 잠들다’라는 묘비명처럼 “나 또한 이름을 돌 위에 새기지 않고 물 위에 새기리라. 인연 따라 주어진 이 명상(名相)을, 저 무주(無住)의 흐름에 맡길 따름”이라는 「이름에 관하여」 등을 만날 수 있다.
제3부 ‘수필의 연원을 생각하며’에서는 수필은 지적(知的) 탐구의 영역에 속하는 ‘에세’와는 또 다른, ‘수필’은 같은 산문문학의 갈래이면서 우리에게 정서적 만족을 수여하는 이미지의 문학, 곧 창작문학임을 밝힌다고 선언한 「수필은 창작문학에 속하지 않는 것인가?」, “수필은 다른 장르와 달리 작가의 가치가 곧바로 작품의 가치로 환산된다. 글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또한 정(情)의 문학이며 정서적 만족을 수여하는 EQ의 문학”임을 밝히며 출발한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60』의 발간사인 「수필의 현주소」, 바쁜 시대적 요청에 따라 길이가 짧고 뜻은 함축적이며 언어는 간명(簡明)하기에 더 짧아진 ‘아포리즘수필’로 탄생한 「모과 한 알」를 쓰면서 느낀 「‘실험수필’을 위한 몇 가지 제언」 등이 실렸다.
제4부 ‘죽음을 그리다’에서는 1996년 첫 수필집 『빈 배에 가득한 달빛』을 출간하였을 때 법정 스님께서 보내주신 엽서에 낯익은 만년필로 쓴 “가난이 우리를 이만큼 키웠습니다”라는 글에 감명받아 평생 마음에 간직한 「법정 스님의 편지」, 고장난 에어컨의 실외기 공사 때문에 한쪽 벽면을 치워야 했기에 애지중지 읽고 모아온 책을 솎아내야 할 처지에 처한 「책 버리는 날」, 104세가 되어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폐기종을 앓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추락사 등 죽는 순간까지 고통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작가들을 추억한 「죽음을 그리다」가 읽어볼 만한 글이다.
제5부 ‘작가란 무엇인가’에는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가 『페스트』를 발표한 카뮈를 ‘신(神) 없는 성자’ ‘덕망 있는 무신론적 성자(聖者)’로 평가한 것처럼 작가는 시대의 등불이며 중생 구제를 서원하는 관음보살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작가란 무엇인가」,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본 보르헤스가 “그 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썼다가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문학이란 일종의 양피지 사본이 아니냐”는 물음을 되새기하는 「보르헤스를 다시 읽다」, 사회적인 약자 편에 서서 언제나 불의와 맞서 싸운 시대의 양심,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던 「오에 겐자부로를 말하다」, 17세기 이래 프랑스와 유럽 각국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500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영원한 고전(古典)으로 자리잡은 「몽테뉴의 ‘수상록’」 등 굵직한 수필이 실렸다.
■ 맹난자 수필가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국대 불교철학과를 수료했다. 공식적인 최초의 작품은 1964년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스님을 친견하고 쓴 기행문 「극락지일야(極樂之一夜)」로 대한불교 신문에 실렸다.
1969년부터 10년 동안 월간 『신행불교』 편집장을 지냈으며 1980년 동양문화연구소장 서정기 선생에게 주역을 사사하고 도계 박재완 선생과 노석 유충엽 선생에게 명리(命理)를 공부했다. 능인선원과 불교여성개발원에서 주역과 명리를 강의하며 월간 『까마』와 『묵가』에 ’주역에세이‘를 다년간 연재했다.
수필선집 『까마귀』, 수상록 『본래 그 자리』(2016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수필집 『빈 배에 가득한 달빛』, 『사유의 뜰』, 『라데팡스의 불빛』, 『나 이대로 좋다』, 『시간의 강가에서』(2018년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에세이집 『하늘의 피리소리』(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선집 『탱고 그 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 『만목의 가을』이 있으며, 역사 속으로 떠나는 죽음 기행 『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와 개정판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기억하라』, 작가 묘지 기행 『인생은 아름다워라』 『그들 앞에 서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Ⅰ·Ⅱ), 그리고 『주역에게 길을 묻다』(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선정)와 일어판 『한국 여류 수필선』 외 공저 다수가 있다.
2002년부터 5년 동안 수필 전문지인 『에세이문학』 발행인과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을 역임하고 『월간문학』 편집위원과 지하철 게시판 <풍경소리>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사)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젊은수필』과 『The 수필』 선정위원장, (사)한국문인협회 상벌제도위원장 역임, 현재 (사)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고문이다.
현대수필문학상, 남촌문학상, 정경문학상, 신곡문학 대상, 조경희수필문학 대상, 현대수필문학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