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고양】 이토록 작은, 이토록 미운, 이토록 쉬운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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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8 12:23 | 최종 수정 2021.06.2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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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모기들은 비행학교에 다니는 게 틀림없다. 나비들이 지그재그로 날며 천적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처럼, 이놈들도 순간이동법과 교묘한 회피술을 익힌 거다. 360도 회전과 후진, 번개가 치는 듯한 비행술…. 그러니 ‘이놈들을 잡아야지!’하고 아무리 눈으로 쫓더라도 표적을 잃기 일쑤인 게지. 놈들은 어느새 몸에 구멍을 파고, 피를 빨고 달아난 뒤, 흔적을 남겨놓는다. 가려움과 부어오른 피부. 분노가 피어오른다.
어느 초보 엄마는 아이 발가락이 하나가 퉁퉁 붓고 빨갛게 변하자 기겁을 했다. 이게 뭘까? 아이가 아파 걷기를 힘들어하니 놀랄밖에. 큰 병이 아닐까? 엄마는 아이를 근처 의원에 데려갔다. 그 의사 왈. ‘문 자국도 없고, 긁지도 않는 걸 보니, 뼈를 다쳤을 수 있소!’ 큰 병원서 엑스레이를 찍지만 문제는 없다. 다시 소아과. 그때쯤 붓기도 가라앉아 정체가 드러났으니, 모기다. 진짜 모기였냐고? 아이가 다시 눈이 퉁퉁 부어 ‘강제 윙크’를 하고 다닌다. 에프킬라와 기피제와 모기향 등등을 사러 가느라 10여만 원 병원비에 더해 지갑은 얄팍해졌다.
중력(Gravity)을 '만유인력(萬有引力)'이라 한다. ‘어디나 혹은 모든 물체의 당기는 힘’이라서 그렇다. 모기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디든 모기가 있다. 며칠 전 아파트 놀이터에서 발코니 음악회를 진행했다. 풀과 관목과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었는데, 초청 성악가가 가장 힘들어했던 게 다름 아닌 모기였다. 긁을 수가 있나, 휘휘 손 저어 쫓을 수가 있나. 우리 모두 그랬다. 밤 산책에서도, 집안에 누워 잠을 잘 때도, 거기엔 늘 모기가 있다.(방충망도 소용없다)
모기는 공간에서만 아니라 시간 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다산 정약용이 쓴 '증문(憎蚊)'은 모기를 증오하는 글. “호랑이가 울 밑에 으르렁해도 코 골며 잔다. 뱀이 처마 위서 있어도 구경할 수 있다. 모기가 웽하고 귓가를 맴돌면 기가 죽어 간담이 서늘하다.” 이불 속에 숨으며, 이마와 코를 내놓으니 “내놓은 이마는 부처님 머리처럼 울퉁불퉁해진다. 제 뺨을 때리고, 불을 켜고 일어나 온 방을 헤매니 한여름 밤이 일 년과 같다.” 유배지에서 흙바닥에 볏짚을 깔고 자는 신세였으니, 그토록 작고 미천한 모기였지만 당할 수가 없었던 게다.
나는 해마다 모기와 정기적 육박전을 치러왔다. 물리면 일어나 전등을 켠다. 그리고 창문과 방문을 닫는다. 킹스맨에서처럼. 찬찬히 벽과 천장을 살핀다. 걸려있는 옷과 창문 커튼도 흔든다. 보이면 살금살금 다가간다. 넓적하게 수건을 손에 쥐고(손바닥과 책은 핏자국을 벽에 남기니 피한다) 잽싸게 탁! 한참 더 탐색한다. 새벽 2시고 4시고 상관없다. 한 시간여가 넘게 싸울 때도 있다. 미션(?)이 끝나야 다시 잠에 드는데, 문제는 웽웽 숨었던 모기가 또 출몰한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다시 일어났다. ‘복수는 나의 것’. 벌겋게 충혈된 눈, 축 처진 몸이 다음날까지 남아있지만 복수의 희열,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올해는 일찍 모기장을 샀다. 7~8인용을 사서 안방에 설치했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서 느꼈던 아늑함이 되살아났다. 며칠째 잠을 잘 잤다. 모기는 이제 딴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증오와 전쟁은 멈췄고, 모기향과 살충제에 들어갈 돈과 불안도 없어졌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다른 문제도 손쉬운 해결법이 있을 것이다. 이미 모두 알고 있고, 이미 다른 곳에서는 시행되어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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