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수의 수읽기】 바둑의 관점

손종수 승인 2021.07.01 15:45 | 최종 수정 2021.07.05 11:15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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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벽화 '바둑 두는 여인'


바둑에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숲이라는 전체를 조망하는 ‘대세관(大勢觀)’과 숲속의 모든 개체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피는 ‘수읽기’.

바둑의 관점은 정치판을 들여다보는 데도 유용하다. 바둑을 배우고도 그 이치를 바둑판 바깥에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둑의 껍데기만 아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통령, 도지사, 전직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감사원장 등은 나무 즉, 숲을 구성하는 하나의 개체이고, 이들에 대해 쏟아지는 각계각층 장삼이사들의 갑론을박이 ‘수읽기’인데, 지금 이 나라 정치판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거의 모든 부류가 한 개체의 사소번다한 사실에만 매달린 편견의 ‘수읽기’에 골몰하느라 ‘대세관’을 잃었다는 데 있다.

흔히 말하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상황. 아니, 나무는커녕 나뭇가지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숲을 보려면 숲에서 나와 숲에서 멀어져야 한다. 충분히 거리를 두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숲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게 ‘대세관’이다.

거악(巨惡)을 보는 눈도 그러하다. 거악은 숲과 같다. 숲속의 나무들을 낱낱이 살피는 <수읽기>가 아니라, 숲 밖으로 나와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대세관’으로 봐야 한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날마다 세계 최악의 신뢰도를 갱신하고 있는 이 나라 주류 언론, 탐욕으로 똘똘 뭉친 극악한 사익집단이 누구를 떠받들고 누구를 핍박하는가. ‘대세관’에 의한 답은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정치에도 선악은 분명히 존재한다. 선은 화합 속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악은 이익을 위해 하나로 뭉치지만 그 안에서 불화한다.

선각도 말씀하셨다.

군자는 서로 어울리되 같아지기를 강요하지 않으나, 소인은 같아지기를 강요할 뿐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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