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의 일상통신】 대강 빨리 잘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승인 2021.09.16 11:45 의견 0

일을 하나 맡게 되었다. 일종의 문화예술 프로젝트다. 바늘과 실을 가지고 작업하는-실은 훨씬 더 다양하게 섬유를 이용하는 예술가들이다-자수인들 10명이 공동으로 전시회를 여는데, 이분들과 사전에 인터뷰를 진행하고 글을 쓰는 일이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동영상을 함께 찍는다. 코로나19 시대에 전시를 영상으로 대체했던 쓰라린 기억 때문에, 이제는 ‘메타버스’ 시대로 불릴 만큼 인터넷으로 전달되는 정보가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이 작업들은 필수적인 게 됐다. 글작가와 영상작가가 자수인에게 붙는다.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다독, 다작, 다상량'을 말하지만 인터뷰 같은 실무 작업에서의 요령 하나는 ‘미리 글을 써서 가는 일’이다. 그러려면 접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사전에 찾아봐야 한다. 거기서 대략의 줄기가 나오고 핵심 키워드 몇 개가 정리되면서 읽을 만한 글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서 좋은 질문이 나오고 당연히 좋은 답이 온다. 이야기의 순서를 잘 잡을 수도 있다. 먼저 부드럽게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면 자연스레 깊은 얘기가 나온다. 당연히 품이 든다.

동영상 제작도 알다시피, ‘막노동’에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다. 기획하고, 일정을 잡고, 촬영을 진행한 다음에 이를 편집하고 상영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데까지 많은 시간과 힘이 든다. 여러 개의 카메라와 녹음기를 쓴 뒤 이를 편집기에서 맞춰야 한다. 작품과 작가마다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선택하는 것도 영상감독의 일이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작가의 이력을 보고서는 피아노곡을 쓰고 싶었고, 달항아리를 만드는 작가는 가야금을 넣어달라고 요청해 왔다. 저작권 문제도 해결해야 해서 지방 출장도 간다.

이 동영상 작가가 어느 날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일을 ‘대충, 빨리, 잘’ 하라고 이야기 들었다는 것이다. 일을 우리에게 맡긴 그 기획자 겸 제작자가 하신 말인지, 혹은 다른 감독에게서 들은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게 대략(대충) 무슨 말인지 우리는 서로 알아들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다.

‘대충’은 우리말이다. 국어사전 해석은 ‘대강을 추리는 정도’다. '대강(大綱)'은 무엇인가? 그물을 펼 때, 그물을 지탱하는 가장 굵은 줄이다. 사물의 가장 주가 된다. 요령을 붙잡는 일이다. '요령(要領)'은 사물의 요긴하고 으뜸되는 골자나 줄거리다. 허리(腰)나 목덜미(領)를 붙잡으면 몸과 머리를 제대로 장악하게 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에는 힘을 쓰지 않아야 하는 거다.

'빨리'는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작업일 때 필수적인 요소다. 기자는 데드라인이 있어 그 시간을 넘기면 아예 신문이건 방송이건 잡지이건 간에 낼 수가 없다. 소설연재를 하던 과거의 작가들이나 웹툰을 연재하는 현재의 작가들이든 ‘펑크’는 가장 두렵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시간 안에 장소에 도달해 있으면 미리 준비도 하고 둘러볼 수 있는 여유도 있는데 늘 늦는 사람들은 뛰거나 택시를 타거나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스트레스와 함께 실수도 커진다. 미리미리 차근차근 해 놓는 게 가장 좋다.

‘빨리’라는 말엔 다른 의미도 있다. 먼저 실행해 보라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에 빨리 들어가는 작가는 초고를 쓸 수 있게 된다. 초안이 나오면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조언을 하거나 개선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실수든 성공이든 (일찍)수정과 강화의 시간을 얻을 수도 있다. 먼저 시작해 보아야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도 간파된다. 성공의 비결은 빨리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다.

공급이 많아지고, 검색이 얼마든 가능하고, 선택지가 크게 넓어진 세상에서는 ‘잘’ 일하는 것도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대충하고 빨리하면서 잘하기도 하는 일은 어려운 것 같지만 짐 콜린스의 명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란 책은 간명한 결론을 전달한다. 그저 좋은(good) 것에서 위대한(great) 기업이 된 비결은 “잘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대강’을 이해하면서 ‘빨리’를 실행하는 곳에서 ‘잘’이라는 말은 자연스레 붙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영상작가와 나-는 만날 때마다 외친다. “대강 빨리 잘!”

PS. 우리가 맡은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궁금하신가? 서울 성수동 스페이스 오매에서는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자수살롱>이 열린다. 김이숙 기획. 작가 김규민 박연신 신승혜 오정민 정은숙 정희기 최수영 한승희 한정혜 최향정. 글 원동업. 영상 노선.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