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 푸른 밤의 여로
_강진에서 마량까지
유성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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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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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다는 건 슬픈 거야. 슬퍼서 둥글어지기도 하지만 저 보름달을 한번 품어보아라. 품고서 가을 한가운데 서 봐라.// 푸른 밤을 푸르게 가야 한다는 건 또 얼마나 슬픈 거고 내가 나를 아름답게 잠재워야 하는 모습이냐. 그동안 난 이런 밤의 옥수수 잎도, 옥수수 잎에 붙어 우는 한 마리의 풀벌레도 되지 못했구나. 여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매단 저 둥근 사상과 함께 강진의 밤을 걷는다, 강진을 떠나 칠량을 거쳐 코스모스와 만조의 밤안개를 데리고 걷는다. ‘무진기행’은 칠량의 전망대에 맡겨두고 내 부질없는 시(詩)와 담뱃불만 데리고 걷는다. 걷다가 도요지 대구에서 추억의 손을 꺼내 보름달 같은 청자항아릴 하나 빚어 누구의 뜨락에 놓고 난 박처럼 푸른 눈을 욕심껏 떠본다.// 구두가 미리 알고 걸음을 멈추는 곳,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김영남 <푸른 밤의 여로-강진에서 마량까지>
강진에서 마량까지, 김영남 시인을 따라가는 길은 조금은 고단하다. 우선 강진까지의 원정(遠征) 길이 그러하고, 어렵싸리 강진에 닿아도 이번에는 구강포를 기점으로 강진만의 한쪽 가랑이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시인의 아는 체를 다 받아줘야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여기는 온전히 그의 ‘나와바리’다. 그는 장흥 대덕 출신이지만 그의 생가가 있는 분토리는 강진 마량에 붙어있고, 그에 이르기 위해서는 영락없이 이 길을 따라가야만 한다. 한 술 더해 시인은 스스로 수도 없이 타고 오르내렸을 이 길을 ‘푸른 밤의 여로’라고 명명하여 아예 ‘새끼줄’까지 쳐버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강진에서 마량까지를 ‘푸른 밤의 여로’라고 불렀을 때, 도저히 그를 거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구강포는 그렇다 치더라도 칠량의 옹기가마와 대구의 청자도요지를 지나 마량의 까막섬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 얼마나 푸른지를. 푸르러서 얼마나 슬픈지를. 때는 가을이고 코스모스 하늘대는 해안 길을 따라가다 밤안개 가득한 마량에 이르렀을 때, 마침 달이라도 둥그렇게 떠오른다면 결국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사실 시인에게 티는 안냈지만 나는 그와 처음 가기 전에도 몇 번이고 이 길을 오르내렸고, 그 후에도 여러 번 홀로 가기도 했다. 모란이 필 때 영랑생가를 들렀다가 가고, 동백이 필 때 다산초당을 들렀다가도 갔다. 마량에서 물 건너 고금으로 약산으로 ‘그 섬에 가고’ 싶을 때도 갔다. 탐진강이나 천관산, 정남진을 찾을 때 일부러 돌아서 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안다. 강진에서 마량까지, 그 길이 얼마나 빛으로 가득한 길임을. 물비늘 찰랑이는 바다 너머로 뭍인지 섬인지 가뭇하고, 개펄마저 얼마나 투명하게 빛나는지. 그 빛 저물고 나면 이번에는 푸른 밤으로 얼마나 우리를 유혹하는지를.
골목이 시작되고, 골목 옆구리/ 파도 출렁대는 곳에 환한 창이 있다./ 그 창에선 초저녁부터 김칫국 냄새가 번지고/ 가끔 웃음소리도 들리곤 한다. 그런데 빠져나온/ 웃음소리 하나가 창을 부풀게 한다./ 자꾸만 부푸는 게 커다란 분홍 풍선이다./ 쪼그리고 앉아 그 풍선 잡고 있으니 내가 질질 끌려 내려간다./ 끌려가 감나무에 걸려 대롱대다/ 바다에 빠져 죽을 것 같아 안간힘으로 버티어본다./ (……) 난 그 풍선을 잡고 먼 나라로 가고 싶다./ 항구란 배만 타는 곳이 아니라 그런 풍선을 잡고/ 더 따뜻하고 아늑한 나라로 출발하는 곳임을,/ 풍선에 바람이 빠져버리면/ 예서부터 흔들리는 귀환이 시작되는 곳임을/ 배운다, 마량항 부둣가에 고동처럼 붙어서. -김영남 <마량항 분홍 풍선>
시인과 마량의 한 허름한 횟집에서 밤새 분탕질을 치르고 어딘지 모를 유숙(留宿)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신세계의 아침’을 만났다. 열린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새소리는 가볍지만 맑고도 밝았다. 숙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몸은 가뿐했고, 설레듯 유숙의 문을 열고 나섰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밤새 달빛 교교하던 포구에는 어디로 가는지 모를 배가 묶여 있었다. 아마도 고금도나 약산도로 가는 배이리라(그때만 해도 마량에서 고금도를 잇는 연륙교가 세워지기 전이었다). 그 배를 타고 어느 섬으로인가 가고도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내딛으면 땅은 문향(文鄕) 장흥이고, 거기 가을 천관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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