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_김제 벽골제와 지평선
유성문 주간
승인
2021.10.07 09:00 | 최종 수정 2021.10.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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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구나 오로지 그리움으로만 일렁이는구나
만경창파 일엽편주 떠돌던 바다는 어디로 갔느냐
칠만칠천사백육십보를 돌아 구천팔백사십결로
세상의 모든 들판이란 들판은 다 모여들고
세상의 모든 바람 황금물결로 넘실거려도
아직 그리운 고향은 아니로다
가야겠느냐
기어이 물둑마저 넘어
뼛속까지 사무치는, 사무쳐 출렁이는
그 바다로 가야겠느냐
그러나 그대
죽음 아니고야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졸시 <벽골제(碧骨堤)에서>
동양 최대의 옛 수리시설이라는 벽골제는 숱한 민중의 뼛골로 이루어진 물둑이다. 벽골제 인근의 ‘신털뫼’와 ‘되배미’는 그 고단한 역사의 흔적이고. 축조공사에 동원된 인원이 얼마나 많았던지 일을 마친 인부들이 신에 묻은 흙을 털어내니 산을 이루었고, 일일이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워 500명들이 논을 만들어 되로 되듯 한꺼번에 500명씩 세었다는 것이니.
더욱 애틋한 것은 청해진 유민들에 관한 기록이다. 장보고가 죽은 후 그 잔여세력을 두려워한 신라 조정은 완도의 청해진을 폐쇄하고, 그 유민들을 벽골제 인근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제방 보수공사에 동원했다는 것이다. 한때 바다를 주름잡던 그들이 제방에 앉아 또 다른 ‘만경창파’를 바라보는 심경은 과연 어떠했을지….
모악(母岳, 모악산)에서 어머니의 자궁인 바다에 이르기까지 들판은 오롯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바람마저 거칠 것 없으니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그러나 그것은 풍요가 아니다. 징게맹갱 외에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의 모든 나락들은 시름으로 고개를 떨군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벼>
그러나 이제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팔아 더 황폐해져갈 뿐. 벼가 떠나면서 바치는 것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우리는 애써 그 사랑을 잊는다. 아버지인 농부와 어머니인 대지는 그렇게 잊혀져간다.
고향을 떠나왔을 때 고향인 어머니도 잊힌다. 그러나 세상의 거친 들판에서 홀로 상처입고 헤매일 때 비로소 고향을 떠올린다.
아줌마, 얼마나 더 가야 지평선이 나와요/ 여그가 바로 지평선이어라우/ 여그는 천지사방이 다 지평선이어라우/ 바람 들옹게 되창문이나 좀 닫으쇼잉/ 그렇구나 이 세상에는 천지사방/ 지평선 아닌 데가 없구나/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제 어디서나/ 눈 감아도 떠도 다 가물거리겠구나 -정양 <지평선>
어찌 지평선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찾아야 할 것들은 결국 우리 곁에 있다. 다만 그리움이 없어 보지 못할 뿐. 보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 스러지고 떠나갈 뿐.
문득 망해사 아래로 아득히 지는 해가 보고 싶다. 그러나 그조차 이제는 끔찍한 일이다. 해는 이제 고군산바다의 수평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심포항에서 바라보는 그 붉디붉은 놀을 가르는 것은 수평선보다 더 아득한 새만금의 길고 긴 물막이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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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 부근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층 로비에서 안으로 몇 걸음 내딛으면 만나게 되는 제1전시실에는 어른 키보다 높이 쌓인 작가의 <아리랑> 육필 원고지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무려 2만장에 이르는 원고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글쓰기의 체험밖에 갖지 못한 요즘 세대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창작 산고의 산 증언이다. <아리랑>이 시작되는 구한말의 국내외 정세, 소설의 배경인 김제가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의 표적이 되었던 이유 등을 통해 문학관의 각 전시공간은 갑자기 1세기를 거슬러 민족의 수난기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한 작가의 취재노트와 거기 삽입된 그림들은 이 작품이 얼마나 치열하게 역사를 증언하려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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