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_문향(文鄕) 장흥과 고(故) 이청준 선생

유성문 주간 승인 2021.10.21 09:00 | 최종 수정 2021.10.23 11:40 의견 0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르 날아올라도 저 아그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하다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이청준 <눈길> 중에서

가을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은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가 숨어살던 곳이라 전한다. 그만큼 천관산은 장흥사람들의 삶의 내력과 그늘을 담고 있다. ⓒ유성문(2006)

사실 나는 남도여행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남도에는 ‘세 가지’ 금기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보성(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벌교)에 가서는 ‘주먹 자랑’하지 말며, 순천에 가서는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는 ‘돈 자랑’하지 말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이 ‘세 가지’밖에 없는 나로서는 남도길이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웬걸, 거기에 한 가지가 더 늘었다. ‘장흥에 가서는 글 자랑하지 말라’이다.

작고하신 이청준 선생을 비롯하여 송기숙, 한승원 같은 대가에다 시인 김영남, 소설가 이승우 같은 중견이나 신예들, 김석중 같은 고향지기들에 이르기까지 이 작은 고장 안팎으로 글쟁이는 차고 넘친다. 멀리 거슬러 올라 조선 중기 가사문학의 효시인 기봉 백광홍이며, 따지고 보면 이 고장 출신 한승원 선생의 따님인 한강 작가 역시 장흥의 문기(文氣)를 잇고 있는 셈이다. 천관산 등성이의 무슨무슨 바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만 하더라도 도저히 관(官)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끄러우니, 이 땅의 문맥(文脈)은 타고난 내력인 듯싶다.

영화 <천년학> 세트장. 이청준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백 번째 작품으로, 장흥 회진에서 찍었다. ⓒ유성문(2006)

어쩌다 김영남 시인과 ‘푸른 밤의 여로’를 동행하게 되면서 말년의 이청준 선생과도 교류를 갖게 되었다. 당시 시인은 동향의 이청준 선생, 그리고 김선두 화백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장흥에 내려가 배회하면서 고향의 의미를 되새겼고, 시인의 시와 소설가의 산문, 화가의 그림이 어울린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 뒷풀이 격인 자리와 영화 <천년학> 장흥 시사회 등이 이어지면서 그토록 흠모하던 거장과 술자리까지 합석하는 영예로운 기회를 여러 차례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지 않았다. 평소 하루 담배 세 갑과 소주 한 병을 정량으로 여겼던 선생이 폐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끝내 2007년 펴낸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가 마지막 작품집이 되고 말았다. 책 서문에 ‘석양녘 장보따리 거두는 심사 속에 이 책을 꾸몄다’고 밝힌 선생은 책을 펴낸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학과 삶에 대한 절절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천년학> 시사회 즈음 장흥에서 자리를 함께한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의 저자들. 왼쪽부터 김영남 시인, 고 이청준 선생, 김선두 화백. ⓒ유성문(2006)

“‘죽어라고 달려온 것이 여기까지구나’ 하는 기분이 듭니다. 제 몸 상태로 이 소설 이후를 욕심낼 수 없는 처지니까 좀 부끄러워요. 자신에 대해, 내 몸에 대해, 이웃에 대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선생은 간담회 말미 “자리를 파하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뒤늦게 떠오른다”는 우스갯소리 뒤에 진지한 끝인사를 덧붙였다.

“다음에도 여러분을 이런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람을 넘어서 기원합니다.”

하지만 그 기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생은 2008년 7월 마지막 날, 그가 낳고 자란 회진의 바닷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은 떠나보낸 아들의 발자국을 눈물로 되짚어오던 어머니의 ‘눈길’을 따라가야 한다. 바다로 열린 선생의 무덤 앞에 서면 먼 바다가 아스라하다. 바다로 간 한 마리의 선학은 이제 어머니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을까.

장흥 장재도 바닷가에서의 일출. 무릇 모든 떠오르는 것들은 져버린 것들의 소산이다. ⓒ 유성문(2006)

그는 늘 해변 밭 언덕 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노래가 다했을 때 그와 그의 노래는 바다로 떠나갔다. 바다로 간 그의 노래는 반짝이는 물비늘이 되고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갔다. -이청준 문학비 ‘해변 아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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