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J선생님 댁에 들렀다. 28년생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은 비록 지팡이를 짚었을망정 당시 성동문화원이 임시로 세 들어 살고 있는 좁은 계단을 스스로의 발로 올라오셨을 만큼 건강하셨더랬다. 사진으로만 뵙던 분이었다.
나는 그 뒤로 그분에 대해 지역신문에도 쓰고, 동네 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잡지에도 쓰고, 영상으로도 만든 바 있었다. 무슨무슨 마을의 역사가 결국은 자연에 더해, 문화와 사회에 더해, 사람의 무늬라는 걸 나는 그분을 통해서 알았더랬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 J선생께서는 침대에서 내려오시다 낙상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연세가 드시면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게 당연한가 보다. 해서 수술을 하고, 오랜 동안 집밖에도 못나가는 그런 날들이 지속됐다.
낙상을 당해 누워 계셨으니, 집으로 오는 요양보호사가 필수인 터. 지난해 12월 10일 누워계신 선생께 요양보호사가 오셨다. 하루 3시간쯤 환자에게 필요한 일들을 해드린다. 환자는 무엇이 필요한가?
누워만 계신 환자는 시간을 가지고, 몸을 뒤집거나 자세를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그곳이 무르고 헐고 피부 세포가 죽어버리는 욕창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이러한 일 또한 흔한 일이다.
환자에게는 환자에게 필요한 음식이 달리 있는 법이다. 입맛에 맞도록 영양 상태와 현재의 환자 몸에 맞도록 음식을 달리 준비하여 제공해 드리는 일도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다.
환자의 청결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집안을 환기하는 일, 필요한 경우 침구라든가 활동하는 공간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 그렇다. 설거지가 있다면, 필요한 빨래가 있다면 그러한 일도 요양보호사의 일이다. 환자의 몸을 씻기우는 일도 요양보호사가 한다.
그러니까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은 집안일을 돕는 가정부나 집사로서가 아니라, 요양 즉 치유가 될 수 있도록 돕는 모든 활동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요양보호사를 아줌마로 부르지 마시길. 집에 청소하러 오신 분이라고 생각하여선 더욱 안 되는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길).
그분 요양보호사는 하루 6시간을 일하신다고 했다. 하루 두 분이니까 각 3시간 정도씩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곳이 좋아, 환자분과 인연을 맺은 걸 놓을 수가 없어 멀리 금천서 예까지 세 번 대중교통편을 갈아타고 오신단다. 그리고 요양이 필요한 모든 분들에게 필요한 교육도 같이 병행을 하신다는 거다. 여섯 시쯤에 집을 나와 저녁 일곱 시쯤이나 집에 들어가는 일.
나도 어머니를, 우리 형제들도 어머니를 3년여 모신 적이 있다. 형제들이 번갈아서 매일 밤 어머니집으로 퇴근을 해서, 아침이면 새로 밥을 짓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조기를 굽고, 침구를 털고 옷을 빨고, 산책을 시켜드리고. 필요한 때 혹은 정기적으로 목욕을 시켜드리곤 했다. 그때 든 생각.
"효자가 하는 모든 일들을 요양보호사분들이 하시는 것이로구나."
J선생님은 요양사분을 ‘천사님’하고 부른다. 그 분이 오시는 때, 반가운 말벗도 되고, 내게 필요한 일을 해주시니 고마움의 표현이다. 동시에 이건 J선생님의 인격이기도 하다. 누구든 귀하게 인정하고 높여주시는 인격.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나 감사해 이 공간은 그때 무릉도원이 된다고 하시는 건, 또한 그분의 문학적이고 시적인 감수성이다(그분은 왕십리 복숭아밭에서 태어나셨다).
아래 ‘인연’이란 글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P요양보호사님의 최근 작품이다. 열네 살 때부터 스물세 살 새 인연을 만나기까지 시흥의 어느 양말공장에서 일했다는 그분은 새로 공부를 시작해 요양보호사가 됐고, 지금도 학업을 이어가는 여정에 있다. 그분 또한 만남을, 인연을 귀히 여기는 분인 게다. 좋은 분들이 함께할 때, 우리는 천국에도 있고 무릉도원에도 있게 된다.
인연은 소리 없이 바람처럼/ 살며시 찾아옵니다/ 인연은 혼자서는 이어갈 수/ 없습니다/ 좋은 인연은 서로서로 배려하며/ 이해하며 만들어 갑니다// 썩은 동아줄처럼 끊어지기/ 쉬운 인연 또한 한 사람의/ 잘못으로 끊어지진 않겠지요/ 오해와 이해 부족 배려심 없는/ 인연은 뚝 하고 끊어지기/ 쉬운 인연입니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만나는/ 인연으로 우리네 삶은 웃고/ 울고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겠죠// 수없이 만나는 인연 중에/ 아픈 인연이 아닌/ 이쁘고 소중한 인연이길/ 바라는 건 모두의 바램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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