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도덕경】 1. 명(名) : 이름

김규철 서원대학교 교수 승인 2022.06.08 09:00 | 최종 수정 2022.06.13 13:29 의견 0

(일러두기) 본 도덕경은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읽기를 권합니다.

첫째,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격언집으로 읽으면 좋습니다. 도덕경에는 삶의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노자철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부적합합니다. 그런 분들은 노자철학 전공자들이 쓴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둘째, 한글 위주로 읽기를 바랍니다. 그것으로 노자의 지혜를 흉내 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자가 병기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읽다가 원문이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아 확인하기 쉽게 배려하는 마음에서 첨부한 것입니다.

셋째, 읽는 도중에 나오는 도를 아는 사람, 도가 있는 사람, 성인, 통치자, 지도자, 왕 등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나’로 치환하여 읽기 바랍니다. 그렇게 읽으면 마음씀씀이도 달라지고, 행동거지도 진중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또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넷째, 가능한 한 의역보다는 원문의 직역에 충실했습니다. 노자철학을 모르는 중국과 한국의 일반사람들이 이해하도록 한 것입니다. 즉, 철학적 접근이 아니라 격언으로 읽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다섯째, 각 장마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했다’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희들이 이해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해보신다면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입니다.

여섯째,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도덕경이라는 책이 논리 정연한 책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논리는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후로는 필요할 때 필요한 장을 찾아 읽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도덕경이 마음에 드신다면 두고두고 여러 번 읽으시면 좋습니다. 내용을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몸에 배어 실천할 수 있을 때 도덕경의 진가가 나타납니다.

일곱째, 그럼에도 부실한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번역자의 역량부족이라 생각하고 널리 이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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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名) : 이름

(도에는 여러 가지 도가 있다. 그러니)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우리가 말로 표현하는 도(道)는 항상 같지 않고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르다.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이름(名)도 마찬가지다. 이름은 그 대상의 상황과 역할을 보여줄 뿐이다.

無名天地之始 (무명천지지시)

(다만) 무는 천지의 시작이라 할 수 있고

有名萬物之母 (유명만물지모)

유는 것은 만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故常無, 欲以觀其妙 (고상무, 욕이관기묘)

그래서 천지의 시작(무)에서 천지의 오묘한 가능성을 찾고,

故常有, 欲以觀其徼 (고상유, 욕이관기요)

만물의 시작(유)으로부터 만물의 구체적인 종적을 알 수 있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차양자, 동출이이명)

이 둘(無·有/道·名)은 모두 같은 것인데 이름(名)이 다를 뿐이다.

同謂之玄 (동위지현)

玄之又玄 (현지우현)

衆妙之門 (중묘지문)

유무(有無)는 모두 변화무쌍하고 현묘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했다.

★★★ 도는 여러 가지 도가 있다.

1장부터 81장까지 읽고 나면 도가 무엇을 말하는지 자연히 알 수 있다. 그러니 도 그 자체를 알겠다고 너무 목멜 필요는 없다. 적당히 그런 건가 하며 지나갈 일이다. 어쨌든 도는 큰 도, 작은 도, 긴 도, 짧은 도 등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수많은 도가 있다. 도를 한 가지 의미(도)로 한정하여 규정할 수 없는 이유다. 이름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름을 붙이면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나는 집에 가면 아버지고 남편이지만, 밖에 나오면 동료고, 친구고, 선배고, 후배가 되니 각각의 상황에 따라 나의 호칭과 역할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가 도라면, 유는 이름이다. 무가 우주의 이치라면, 유는 인간세의 삶의 순리이다. 무와 유는 같은 이치에서 작동하는 다른 이름인데, 무는 보이지 않는 오묘한 가능성이라면, 유는 만물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실천하는 덕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무든 유든 모두 변화무쌍하여 오묘한 것이다. 무나 유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알 수는 없다. 단편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냥 그런 건가 하며 도덕경을 읽어가다 보면 어렴풋이 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실, 도가 무엇이고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논쟁하고 파고든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쓸데 없는 논쟁을 하느니 낮잠이나 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가볍게 편하게, 격언집을 읽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김규철 /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hohoqc@naver.com

총니(丛妮) / 서원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

nini5832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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