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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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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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사라진, 몇만 남은 바둑인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날을 잡고 밥 한끼 하기로 했다. 등에 비수를 꽂은 인간 때문에 멀어졌지만 실상, 바둑동네에 악연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바뀐 생계의 축이 된 무협에 이런 말이 있다.
도고일척 마고일장 道高一尺 魔高一丈
세상에 도가 한 자쯤 자라면 마는 그 열 배쯤 더 커진다는 말. 그만큼 선업은 쌓기 어렵고 악업은 짓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적은 악이 많은 선을 억압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극소수에 불과한 악연 때문에 삼십 년 가까이 쌓은 바둑인연이 거의 다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직접 얻은 생생한 체험.
그래도 바둑동네는 내게 고마운 곳이다. 미미하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소중한 인연이 남았고 삼십 년 가까이 생계를 해결해줬고 무엇보다 남다른 사유(思惟)를 갖게 해줬다. 페이스북의 공기능 중 하나, 무려 8년 전에 썼던 글이 떠서 하는 말이다.
바둑
햇살 좋은 들판 한껏 팔 벌린 떡갈나무로부터 시작된 생각은 수많은 가지손처럼 사방팔방 뻗어간다. 처음엔 그래야 좋다. 제약 없는 환경, 막힘 없는 사유라야 한다. 생각도 광합성이 필요하다. 초반, 포석(布石)의 시대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의 가지치기가 필요해진다. 숙련된 정원사의 가위질,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선택과 집중의 시간. 정석(定石)은, 제한된 곳에서 발생하는 호각의 절충이다. 너도 좋지만 나도 나쁘지 않은, 열린 가능성으로 닫힌 세계. 정형화한 일부분이지만 단절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결의 전체를 지향하며 흐른다.
중반. 바람이 불고 비구름 몰려와 맑은 눈물 뿌리고 한숨과 감탄의 꽃이 핀다. 숲길을 걸을 때는 풀벌레의 나지막한 속삭임, 새들의 웃음소리 들을 수 있고 대지를 경배하는 풀과 나무, 바위의 기도와 골짜기 구비구비 돌아 낮은 곳으로 임하는 물의 노래 듣는다. 기기묘묘한 맥(脈)과 사활(死活), 요란하되 천박하지 않고 격렬하되 폭력적이지 않다.
종반의 끝내기는 경계를 가름하는 정치(精緻)한 작업. 이 섬세하고 신성한 노동 뒤에는 어떤 모호함도 남아 견디지 못하여 명징(明澄)하다. 선연하고 후련하구나, 조화(調和)의 산하(山河)여!
한 판의 바둑이 끝났다. 서로 마주 보며 흔연히 웃는다. 승리의 기쁨은 승자의 것이지만 패자가 더 많은 가능성을 얻기에 함께 웃을 수 있다. 희고 검은 돌이 거둬지고 바둑판은 다시 텅 빈 태초로 돌아간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수담(手談)을 나눈 사람은 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바둑은 그런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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