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들과 보낸 한나절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8.05 09:00 의견 0

“그러지 말고 한 치수 큰 거로 바지 하나 더 사. 혹시 살이 더 찔지도 모르잖아.”

“그럴까요? 그럼 추가로 사는 바지는 제가 계산할게요.”

“됐어. 이 녀석아. 아버지가 알아서 할 테니 옷이나 잘 챙겨.”

낼모레부터 제가 원하던 직장으로 출근하는 큰아이를 파주로 불러서 양복을 한 벌 사 입혔다. 뭔가 생색나는 축하를 해주고 싶었는데 마침 옷이 없다고 해서 잘됐다 싶었다. 파주에는 괜찮은 옷을 좀 싸게 살 수 있는 L아울렛이 있다.

며느리가 얼마나 잘 먹였는지 결혼한 뒤 아이의 몸이 많이 불었다. 전에 입던 양복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그동안 양복이 필요 없는 회사에 다녔으니 다행이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몸이 조금 더 불 가능성이 있으니(살 빼라고 구박에 구박을 하고는 있지만) 바지 하나를 더 사라고 했다.

아이는 글노동으로 채워야 하는 아버지의 주머니를 자꾸 걱정했다. 예산을 초과했지만 나는 의연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내일 죽어도 오늘 웃어야 하는 아버지잖아? 소도 잡아먹을 수 있는 외상이란 제도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임에 틀림없다.


바짓단을 줄여달라고 맡기고 나니 40분쯤 시간이 남았다. 차 마실까? 다른 곳 구경을 할까? 주고받다가, 둘이 죽이 맞은 게 신발이나 구경하자는 것이었다. 그냥, 정말로, 반드시, 죽어도 “구경만 하자”고 다짐을 거듭하며 구둣가게로 갔지만, 갔지만, 어디 그게 의지대로 되던가? 입구에서부터 썩 예뻐 보이는 로퍼 하나가 아이의 눈길을 빼앗고 말았다.

“신어봐.”

“신으면 더 사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신어봐야 네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알 거 아니냐.”

구둣가게 종업원은 세일즈의 귀재였다. 찰떡같이 달라붙어서, 신었던 신발을 그냥 벗고 나가는 걸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활활 태웠다.

“아버지, 이건 진짜 제가 계산할게요.”

“됐다. 이왕 내돌린 카드니 아버지가 그으마.”

“그럼, 반반씩 내요.”

“그러는 거 되게 치사해 보이지 않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와서 반띵하는 건 모양이 좀 그래. 걱정말고 점심이나 사.”

아아! 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가 깨져야 이 시간이 다 지나간단 말이냐? 정작 내가 필요한 건 신발깔창 하나 사는데도 며칠씩 망설이다 돌아서면서 늘 그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아들과 두런두런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고, 비록 외상이지만 아들에게 양복과 신발을 사 줄 수 있는 내 능력이 행복했다. 아들 앞에서 모처럼 부자 노릇을 했다. 이 녀석도 오늘은 제가 재벌 2세라는 걸 알까?

점심은 아이가 샀다. 밥을 먹으며 아이가 말했다.

“아버지, 제 목표는 여기가 끝이 아니에요.”

“어? 이제 그만 옮기고 정착한다며?”

“아직 젊잖아요. 이왕 금융권에 입성했으니 최고의 은행에 가서 제대로 한 번 일해봐야지요.”

“그래…? 난 거기까지도 괜찮은 것 같다만. 암튼, 꿈이 그렇다니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당장 가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라. 살아보니 허투루 내게 온 순간은 단 1초도 없더라.”

뚝! 더 이상 말을 끌면 잔소리가 된다.

나를 작업실 앞까지 태워다 준 녀석이 차에서 내리더니, 들어가려는 나를 돌려세웠다.

“왜?”

“아버지 한 번만 안아보게요.”

“허허, 그 녀석 참! 날도 뜨거운데...”

얼마 만에 안아보는 걸까? 아니다. 이제는 내가 안기는 건가? 아이가 네 살 때까지는 업고 다닌 기억이 있는데, 가슴으로 당겨 안아본 건 얼마 만일까. 포옹은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길었던 ‘불화’의 세월이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우린 참 많은 강을 건너왔구나. 지금도 큰 강 하나를 건넌 건지도 몰라. 아이가 떠난 자리에 바람이 불어, 조금 상기된 내 뺨을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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