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내게도 애인이 생겼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8.26 09:00 의견 0

아침을 낳는 물안개가 보고싶어 새벽강에 갔다. 거기서 돌 하나를 만났다. 어제 일이다. 돌을 줍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수많은 돌 중 하나가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분명 내게 말을 걸었다. 엎드려 그 돌을 손에 쥐는 순간, 가슴이 서늘했다. 아니, 찡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수사적으로 찡한 게 아니라, 실제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가슴에서 시작해서 온몸을 관통했다. 그 순간, 돌이 내 심장을 삼켰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만 이어주는 게 아니다. 사람과 동물은 물론, 사람과 사물 사이에도 분명 존재한다. 그만큼의 교감도 가능하다. 어쩌면 3천 년 동안 이승과 저승을 오간 나의 윤회와, 강물에 마음 적시고 시간에 몸 부비며 견뎌온 돌의 기다림이 오늘의 만남을 위한 준비였을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깃털처럼 가벼운 인연은 없다. 그깟 돌 하나 주워다 놓고 유난 떤다고 웃을지 모르지만 난 분명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돌이 흔히 말하는 수석, 즉 귀한 돌은 아니다. 강가에 구르는 흔한 돌이다. 수석엔 관심도 상식도 없으니 고르는 눈도 없다. 오히려 돌 하나라도 자연 속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거역하기 어려운 끌림에 그 돌을 품에 안고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받침대가 없으니 염주 위에 세워놓았다.(부처님 삐치시려나?) 가만 들여다 보면 돌은 온갖 풍경을 품고 있다. 해가 떠오르고 냇물이 흐르고 겨울나무가 기지개를 켜고 구름이 떠간다. 지금 이 순간 내게는 돌이 우주다. 내 우주는 내가 짓고 내가 허무는 것이다. 외로움도 행복도 미움도 사랑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와 함께 살아가야지. 돌이 나보다 먼저 죽을 리 없으니 남은 생 보듬고 가야지. 밤에는 함께 별을 헤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야지. 가끔, 아니 지주 술도 나눠 마셔야지. 빗물이 창호지 적시는 날은 함께 울어야지.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하늘로, 돌을 박찬 새 한 마리 힘차게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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