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08.30 09:00 | 최종 수정 2022.08.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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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沙漠)이 되는 날이 있다. 사막을 종단하는 나그네가 되는 날이 있다. 금생(今生)의 날이고 금생(今生)의 일이다.
한마디로 이런 마음을 선가에서는 식광(識光)이라 한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걸음만 내딛으면 산봉우리를 건너갈 것 같다느니, 깜깜한 밤인데도 순식간에 눈이 번쩍하면서 주변이 대낮처럼 훤히 보이는 건 물론이고 산 밑 천 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눈에 다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살짝 맛이 간다 할까, 나는 그 마장, 그 사막, 사막, 끝없는 길, 길 없는 길에 대한 상상력의 미친 경계를 슬그머니 즐긴 적이 많다. <수심요결>을 읽을 때였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었다. 낙타는 어디로 갔을까. 수건으로 얼굴을 둘러싸고 폭풍의 사막을 걸었다. 막막하게 펼쳐진 사막, 모래구릉,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수도 없다. 심장이 뛴다. 불안감, 두려움이다. 불어오는 열사의 바람에 파묻힐 거 같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걸어도 걸어도 비는 오지 않는다. 거대한 사풍을 만나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다. 목이 마르다. 그런데 독사와 전갈이 언제부터인가 뒤를 따르고 있는 건지. 입술은 말라붙고 갈급증으로 억지로 침을 삼키니 목이 부은 거 같다. 그래, 나를 뜯어 먹어라.
나는 진실했던가, 나는 순결했던가? 내가 구하고자 했던 건 무엇인가? 밖으로 구하지만 않으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 내 화두가 뭐였지?
오아시스를 찾았다. 목말라. 단지 목이 마를 뿐 목마름 앞에서는 선도 악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끝없는 지평선만 보일 뿐. 사막 저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지평선이며 구릉들이 아른아른 흔들려 보인다. 다시 열풍이 분다. 오아시스다. 달려가 보니 오아시스는 없다. 신기루였다. 그래도 가물거리는 유토피아.
낙타를 탄 사람들이 사막을 지나가고 있다. 마이트레야 낙타를 타고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내게 다가오고 있다. 커다란 귀, 우뚝한 코, 지그시 다문 입, 인자스레 내려다보는 눈매, 자비로운 몸매.
손을 흔들고 살려줘, 나를 안아줘, 소리를 지르는데 누군가 어깨에 죽비를 가져다 댄다. 습관처럼 합장을 하고 퍼석거리다 고개를 숙이자 죽비가 세 번 어깨를 내려친다. 죽비를 맞아도 정신이 번쩍 들지 않았다.
오, 나의 마이트레야. 이정표는커녕 길도 없는 사막을 계속 헤매고 다녔소. 마이트레야.
방선을 했어도 사막, 포행을 하며 선방을 돌다가 나왔는데도 안타깝게도 내 사바, 청춘의 날들은 온통 사막뿐이었다. 어쩌다 사막에 불시착하게 되었던지.
사막(沙漠)이 되는 날이 있다. 사막을 종단하는 나그네가 되는 날이 있다. 금생(今生)의 날이고 금생(今生)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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