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도덕경】 연재를 마치면서

김규철 서원대학교 교수 승인 2022.09.30 09:00 의견 0

노자 초상


노자 도덕경 81장을 다 읽었습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하늘은 편애하지 않아(천지불인) 오래갑니다(천장지구). 자연의 순리입니다. 자연의 순리는 우주의 순리이기도 합니다. 곧 도(道)입니다. 편애하지 않음은 자연의 처세술이겠지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은 ‘넘사벽’의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힘없는 인간은 자연에서 자신의 안전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이 묵묵부답이니 스스로 보호받고자 신(神)을 만들었습니다. 그 신이 인간이 바라는 안전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신이 인간을 편애(?)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노력은 허사가 되겠지요. 어떤 경우든 신은 인간을 위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만약 신이 자연처럼 천지불인 하여 ‘신은 그런 사소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거드름을 피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신은 그렇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을 버리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신이 필요한 것은 신이 인간의 바람을 들어주어서가 아니라, 신에게 기도하면서 인간 스스로 에너지를 북돋우고, 의지를 다질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고,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신을 만든 진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도덕경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순리대로 살면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도덕경을 자연의 도를 알고자 읽지 않았습니다. 결점 많은 저도 타고난 제 그릇만큼의 크기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길을 찾고자 기대하며 읽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도(道)는 무엇일까요?

저는 저를 지키는 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확장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를 흉내 내면 나를 지킬 수 있고, 나를 이롭게 할 수 있고, 나를 키울 수 있고, 나의 꿈을 이룰 수 있고, 나의 욕심을 이룰 수 있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니 도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세상의 정의도 공정도 어느 것도 나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없는 정의와 공정이 무슨 의미이며,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저는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믿습니다. 양심을 따르는 개인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면 세상은 자연히 정의롭고 공정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양심에 따르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르게 바꾸려 하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니까요. 나를 위한 도(道)의 이유입니다.

‘6가지 세상’이 있습니다. 결점 많은 제가 마음 편하게 살자고 만든 세상입니다. 특별한 근거는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하며 만들었습니다.

➊ 결점 0%의 무결점 세상: 이런 세상은 우주 어디에도 없습니다.

➋ 결점 10% 정도의 세상: 이상사회입니다. 무릉도원 같은 세상입니다.

➌ 결점 20% 정도의 세상: 사람이 살기 좋은 태평성대의 좋은 세상입니다.

➍ 결점 30% 정도의 세상: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입니다.

➎ 결점 40% 정도의 세상: 사람이 살기 어렵고 힘든 나쁜 세상입니다.

➏ 결점 50% 이하의 세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세상입니다.

주위에는 무결점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나쁜 놈들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진짜 세상을 무결점인 세상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깽판 쳐서 세상을 어지럽혀 문제 많은 세상으로 만들고, 그 혼란을 틈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꿍꿍이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류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고 난 뒤 건축자재 팔아 이익 챙기는 더러운 부류입니다. 남의 불행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양심 없는 놈이죠. 결코 정의롭지도, 선하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은 놈들입니다. 이런 놈들 우리 주위에 많고 또 넘칩니다. 어디에나 득시글거립니다.

‘6가지 세상’을 사람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➊ 결점 0%의 무결점 사람: 이런 사람은 없습니다. 신도 결점이 있습니다.

➋ 결점 10% 정도의 사람: 성인군자입니다. ‘부처·예수·공자’와 동급입니다.

➌ 결점 20% 정도의 사람: 주위에서 존경받는 보기 드문 괜찮은 사람입니다.

➍ 결점 30% 정도의 사람: 대부분의 평범한 선한 사람입니다.

➎ 결점 40% 정도의 사람: 사람인지 짐승인지 헷갈리는 못된 놈입니다.

➏ 결점 50% 정도의 사람: 이쯤 되면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에 가깝습니다.

상대방이 무결점 인간이 아니라고 비난을 일삼는 자들도 많습니다. 필시 나쁜 놈입니다. 바로 그놈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짐승 같은 놈이라 저는 단정합니다. 가까이하지 마세요. 짐승과 친분을 맺으면 짐승이 될 가능성만 높아지니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결점이 있습니다.

신도 결점이 있습니다. 도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결점이 있습니다. 결점을 인정하는 것이 도(道)입니다. 결점을 인정하고 나니 제 마음도 편해지고, 상대방에게도 실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사람들을 만날 때 나쁜 점보다는 좋을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➍번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고 싶은데 그 정도 깜냥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도덕경은 1장 도(道)로 시작해서

81장 마지막 부쟁(不爭)으로 끝납니다. 그렇게 보면 도는 부쟁입니다.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면 됩니다. 잘났다고 뻐기지 않으면 됩니다. 역지사지로 배려하고 양보하면 됩니다. 경솔하거나 조급하지 않고 신중하면 됩니다. 억지 부리지 않고, 과욕 부리지 않고, 분수를 지키면 됩니다. 알량한 지식으로 잘난 체하며 삿된 지혜를 자랑하지 않으면 됩니다. 또한 뻔히 보이는 잔꾀도 부리지 않으면 됩니다. 자신의 결점은 인정하고, 상대방의 결점은 들추지 않으면 됩니다.

도를 지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건너뛰려 하지 말고, 차근차근 한 걸음씩, 또박또박 순리를 따라가면 됩니다. 순리를 따르면 부드럽고 유연해집니다. 분수를 알게 됩니다. 자연히 상식에 맞게 됩니다.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겸손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겸손하다는 것이 말은 쉽습니다. 실천은 어렵습니다. 습관이 되기까지는 더욱 어렵습니다. 바로 이것이 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도를 행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하는 이유일 겁니다.

도덕경 81장을 다 읽고 나니

도(道)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스스로의 양심에 맞는 일을 실천하여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도라고 이해했습니다. 공자가 나이 70세에 말했습니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즉 무슨 생각, 무슨 행동이든 그저 생각 없이 행하여도 잘못됨이 없더라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공자처럼 되겠다고 목표를 정하진 마세요. 삶이 피곤해집니다. 그냥 또박또박 분수에 맞게 실천하시면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게 큰 그릇이 되어 있을 겁니다. 사람이라는 그릇은 크는 데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커질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치면 세상의 정의니 뭐니 하는 좋은 가치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내가 없는데. 그러니 나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곧 세상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를 소중히 하는 습관을 만들고, 겸손 하는 습관도 만드는 것이 도덕경을 읽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내 인생의 도(道)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저희도 졸고를 연재하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김규철·총니 배상

(추신) 득의망언(得意忘言).

도덕경은 한 번 읽고 마는 것보다,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입니다. 그러나 뜻을 얻으면 말은 잊는 것이 좋습니다. 달을 봤으면 달을 가리킨 손가락은 치워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말꼬리에 밟혀 헤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인생은 짧으니까요.

<글쓴이>

김규철 /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hohoqc@naver.com

총니(丛妮) / 서원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

nini5832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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