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번호의 전화는 여전히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더구나 몸도 마음도 그리 편치 않은 시간에 전화기를 쥐고 흔드는 낯선 번호에 잠시 망연해진다. 그래도 ‘휴대전화’ 번호가 찍힌 전화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찧은 쌀에 뉘 나듯 가끔 원고 청탁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조금 망설이다가 수신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저, 이호준... 선생님이시지요?”
상대방의 목소리에는 선뜻 해석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인 색깔이 묻어있다. 나보다 젊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은 나이는 아니다. 단 한 문장에서 순간적으로 많은 것을 읽는다. 망설임과 설렘과 짙은 반가움이 거기 있다.
“예, 제가 이호준입니다만.”
내가 나라는 걸 확인해주는 순간, 상대방의 목소리에 걷잡을 수 없는 떨림이 얹혀 온다. 아니, 떨림을 지나 숨이라도 막히는 듯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대체 누구길래 이럴까?
“예, 저는, 페북으로 가끔 찾아뵙는, 답글은 잘 못 달고요. 선생님, 건강하시라고 인사라도 드리려고요.”
사내의 말이 좀 꼬인다. 그런 땐 나라도 진정을 시켜야 한다.
“아! 예, 고맙습니다.”
의례적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건 사람은 절대 아니다. 안부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가 그렇게 떨릴 수는 없으며, 말을 그렇게 더듬을 리도 없다. 그렇다고 왜 전화를 했느냐고 다그칠 수도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늘 마음 같지가 않아서 아직 뵙지를 못했고요.”
“하하! 그러시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예, ○○○이라고 하는데요.”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한자씩 또박또박 부른다. 하지만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사내가 조금 급하게 자신을 설명한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몇 년 전에, 제가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안 좋은 생각으로, 나쁜 생각을 먹고,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울면서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아! 그 사내구나!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친다. 금세 그 순간을 소환한다. 딱 한 번 통화했는데도 그때 일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가, 그 사람이 살아서 전화를 했구나. 그때 그는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을까? 그의 목소리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검은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세상의 끝에 선 사내의 자포자기와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간절함이 무질서하게 얽혀 있던 그 목소리. 일면식은커녕 단 한 번의 교류도 없었던 낯선 사내였지만 절박함이 가슴을 파고들던 목소리였다.
“아! 기억합니다. 몇 년 전에 전화주셨던 분이군요.”
“맞습니다. 죽으려고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전화해서 대성통곡하면서 제 이야기를 했지요. 그때 선생님께서 용기를 주셔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그게 벌써 몇 년 흘렀습니다.”
그 사람이구나. 그가 다시 일어서서 내게 전화를 했구나. 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내 가슴에 안도의 한숨과 풍랑이 동시에 인다. 아, 얼마나 다행인지. 죽음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낯선 사내의 걸음을 붙잡기 위해 매달렸던 밤이었다. 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한 마음에,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말을 마구 쏟아냈는데, 그가 살아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그럼요. 그럼요. 생각나고 말고요. 제가 강원도 인제에 있을 때지요?”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때, 마음이 멍하다고 하면서 새벽에 페이스북에 심정을 적은 글도 제가 봤거든요. 마음에는 그때 입은 은혜가 고스란히 있는데… 지금도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니 먹먹하네요. 선생님!”
“아! 그렇군요. 참 다행입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습니까?”
나는 떨리는 가슴을 토닥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애써 담담하게 근황을 묻는다.
“예, 많이 좋아졌습니다.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과 그날 새벽에 쓰신 글에 용기를 얻어서…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랑으로, 관심을 갖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이 있구나. 그 말씀 덕에 용기를 얻어서… 지금은 임대아파트에도 들어갔고요. 악착같이 일한 덕에 융자 조금 보태서 개인용달도 샀습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조금 어렵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정말…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아이구! 별말씀을요. 정말 잘 됐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늘 마음은 있는데, 먹고 사느라고 아직 찾아뵙지도 못하고… 선생님 좋아하시는 파전에 막걸리라도 대접해드린다고 벼르면서도 못하고, 이렇게 늦게서야 전화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시 일어서서 이렇게 잘 사시는 게 저한테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선생님, 아니에요. 제겐 그때 기적이 일어난 거였어요.”
“고맙습니다. 제가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사세요?”
“예, ○○애 삽니다.”
“아! 그때도 ○○에 사셨는데요?”
“그때도 ○○인 건 맞지만 원룸 지하에 살 때였고요. 지금은 형편이 많이 나아져서….”
“다행입니다. 제가 참 고맙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그래서 말씀을 들어드리는 것밖에 없어서 정말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재기하셔서 전화를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도 그때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에게도 말할 곳이 없어서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던 건데, 제 말을 다 들어주셔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참 많이 미안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제겐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늘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너무 죄송하게도 이제야 전화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별말씀을요. 제가 고맙습니다.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셨으니 제게는 선물 같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한테는 다시 살았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정말 그때, 나이 좀 먹은 놈이 생면부지인 분에게 그런 소리를 했으니, 어지간하면 미친놈이라고 안 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다 들어주시고 진심으로 다독거려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아! 이런 분도 계시구나. 그 순간 다시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진심입니다. 선생님.”
“….”
“제가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선생님. 조금 나아지면 선생님 좋아하시는 막걸리하고 파전 들고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세요. 저도 한번 뵙고 싶습니다. 사는 거야 다 비슷비슷하지요. 저도 여전히 이리저리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근황은 페이스북에서 뵙고 있습니다. 늘 보기만 하고 인사도 못 드려서 오늘 용기를 내서 전화를 드린 겁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나중에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세요. 저도 꼭 뵙고 싶네요. 전화 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걸기까지 오래 오래 망설였을 게 틀림없는, 한 사내로부터 떨리는 안부 인사를 받았다. 죽을 생각으로 내게 전화했다가, 다시 살 용기를 얻었다는 사내였다. 하루 종일 몸살과 약간의 우울에 시달리면서 많이 가라앉아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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