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6시 30분~40분 사이에 시작하기로 한 이유는 첫째 때문이다. 고교생인 그는 학교 등교 시간이 대략 7시 40분이어서, 식사를 7시경에는 마쳐야 한다.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는 많은 아이들이 있겠지만, 그건 그 집 사정이고, 난 아침밥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처도 첫째도 둘째도 아침밥을 거르고 갔다. 첫째는 한국과 포르투갈의 축구경기를 밤새워 본 다음 자다가 밥 먹을 시간을 놓쳤고, 송년회를 거하게 하고 온 아내도 새벽 입장. 둘째도 입맛이 없단다. 밥을 차리고, 따뜻한 건 식혔다, 찬 음식은 데워 다시 고스란히 치워야 하는 상황은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있나? 조금 더 쉽게, 입맛을 당길 수 있는 아침 메뉴는 없을까?
레시피북을 찾다가 멈춘 장은 2015년 8월 7일 금요일에 적은 것. 첫 장면을 시작한 것은 지인의 수술 뒷이야기다. 갑상선 수술을 한 뒤에 항진과 저하가 반복되면서 겪는 어려움. 남편의 실직과 오래 집에서 머무는 그와의 투닥투닥, 이혼을 하네맙네 한다는 그 집안의 사정. 아이는 무슨 교섭-면접인가를 하네 마네한다는 이야기. 유산한 그녀의 절친과 다시 아이를 갖네 마네 한다는 친구 집안의 속사정. (그 집은 늘 폭풍우가 친다는 느낌!!)
그녀를 위로할 음식을 해주고 싶었고, 그 집안이 함께 나누어 먹을 음식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때 준비한 요리가 카레였다. (처음부터 카레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음식을 잘 아는 서울맛집의 스트리트 셰프 마 실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조언해 준 것이 야채 스튜였다.
“양배추, 양파, 당근과 단호박을 준비해요. 부드럽고 영양 면에서도 훌륭하니까. 이걸 올리브유에 볶다가 물을 넣고 푹 끓여요. ‘환자’에게 주면 좋은 회복식이 돼요. 무기질과 비타민의 보고니까.”
그런데 맛은 좀 없을 것 같았다. 방법이 없을까? 아! 카레. 카레만 넣으면 되는 거잖아. 향과 영양과 보기에도 그만한 게 없지. 새벽같이 먹어야 하므로 밥은 7시간 후에 되도록 예약을 해 놓았다. 늦는 법이 없도록 야채도 미리 썰어놓고. (그냥 냉장고에 있는 야채만 쓰지. 남은 야채도 좋고)
우리 넷은 모두 깨끗이 접시를 비웠다. 저항이 있었지만-“카레에 해물 냄새가 강해요!(아니 그럼 해물에서 해물 냄새가 나지, 무슨 냄새가 나?)-.
“한번 물에 데쳐서 넣은 거예요. 냄새 잡으려고 맛술도 넣었고.” - 나
“한번 바싹 볶아야…!” - 첫째아들
나는 그 카레가 마음에 들었다. 밥은 부드러웠고, 해물은 적당히 씹히는 맛도 있었다. 향이 배인 야채들과 국물은 단순한 육수보다 좋았다. 불가에서는 늘 채수-육수 대신-를 만들어 쓴다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잘게 썰린 해물들에선 바다 기운이 느껴졌다. 약간 소금기가 든 듯한, 바닷물(해물) 물들의 내음까지. 그 해물들은 자신을 잃지 않고 있다. 그 해물의 맛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는 미국에서 샐러드 볼과 스튜를 자주 비교한다. 다인종들은 스튜처럼 하나의 맛이 아니라, 서로 개성과 자기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샐러드 보울같다는 이야기. 하지만 스튜는 스튜대로 덕(德, virtue)을 지닌다. 서로 다르지만, 섞여 스튜가 되면서, 뜨겁게 익으며 함께 스튜가 된다. 그걸 마다할 이유도 없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