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봄맞이, 꽃샘바람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3.07 09:33 | 최종 수정 2023.03.08 09:35 의견 0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작정하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통에 익숙한 사람은 고통을 거부하지 않는다. 고통 그것을 원하고, 심지어 그것을 찾는 고통 매니어들도 있다. 고통의 목적은 삶이다. 고통, 슬픔 그 자체를 겪는 사람은 저주가 되지만 그 고통, 슬픔을 극복하는 사람은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된다.

누구나 고통이 필요하지만, 누구라도 그 고통의 감각을 느낄 필요는 없다. 고통은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되려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는 창조적 생을 살아 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 고통은 위대한 경험이다. 고통은 위대한 희망이다. 우리의 가장 조용한 순간들이다. 물론 생에 있어 다른 모든 것들도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은 건 없다. 그러나 반드시 고통을 즐길 줄 아는 생이 되어야 한다. 왜냐, 고통에는 리허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콜록콜록 감기에 걸렸다. 잘 했다. 고고(苦苦)다. 고통과 불행은 삶의 근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그러니 사고팔고(四苦八苦)인 것이다. 그러니 선택한 고통은 福이다. 감기에 걸렸어도 그래도 싹은 돋을 것이고 꽃은 필 것이고 봄날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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