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텃밭 농사를 준비하며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3.21 09:00 | 최종 수정 2023.03.21 10:30 의견 0

승용차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11호 타고 다녔다. 뒤뚱거리는 시골버스를 타고. 걸어서 걸어서. 어찌하다보면 버스를 놓치고 두 시간 세 시간 걷기는 일쑤였다.

먹거리를 구한다거나 모종할 씨앗을 구한다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간다거나. 그래도 읍내에서 내 머무는 곳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다섯 번 있었다. 그 시간만 맞추면 되었다.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길에 꽁무니에 먼지를 꼬리처럼 달고 오던 그 55번 동신운수. 나에게는 늘 그 뒤뚱거리던 추억이 있다.

길바닥에서 낳고 길바닥에서 죽을 팔자인 떠돌이 인생. 꽤나 궁상을 떨었다고? 아니었다. 나는 돈 벌려고 중이 되지 않았다.

작은 수첩과 볼펜을 늘 갖고 다녔다. 희망이었다. 생활속에 오고가며 풍경을 그렸다. 겨울가고 봄,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없었다. 그렇게 장면들을 묘사해나갔다. 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희망 없이 살고 싶지 않았다.

산에는 뭣할라고 왔던가. 미로찾기라고나 할까?

함께 입산한 이들은 앗 아니다, 하고 발을 뺐지만 어떤 인간들은 노다지네, 하며 신도들을 구좌로 생각하고 통장에 낙엽모으듯 차곡차곡 돈을 쌓아 모아두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짜증이 확 치솟아 올랐다. 중 보고는 중 못된다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더 깊은 산속으로 도망왔다. 그 곳이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이었다.


그럴 필요가 내게는 없었다. 한국불교에 환멸을 느꼈던 나는 먹고 살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부처님을 사랑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혹독하고 어렵고 힘든 삶을 어찌 버텨왔느냐고? 그래서 나는 내 몸에게 얼마나 감사해 하는 지 모른다. 작은 수첩과 볼펜으로 무얼 했느냐고? 부처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뜨거운 가슴 뜨거운 눈물을 작은 수첩에 적어 넣었다. 구체적인 그 내용이 뭐였냐고?

<업보를 만드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의도이다, 희망없이 사랑하자. >

<참 나는 어디에 있을까? 참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할일이 무엇일까? 사랑하고싶다, 우우우우.>

따위들이었다

만지고 두드려보고 싶던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어 이제 풀 죽은 듯 살지만 삶은 내게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그렇다고 번뇌와 장애를 다 놓았다 하지 않는다. 그 번뇌와 장애는 존재의 유희, 늘 나의 화두, 최고의 장난감이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그나마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가 그렇듯 한걸음 비껴서 내가 나의 관찰자가 됨으로 간절함과 절심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지 싶다.

머리에 불붙은 듯 간절하기만 하고 절실하기만 하면 어른스럽지 못하고 소심해지기만 한다. 욕망이 환상이라면 그 욕망이 꺼짐은 환멸일 것이다. 매번 다시 시작해본 나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내가 가장 경계했던 지점이다.

그렇게 느긋하게 처처안락이고 사사불공이라는 마음, 세월이 흘러 지금의 삶이라는 게 허전하고 쓸쓸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실패한 인생은 아니었다고 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힘으로 상추, 오이, 가지, 토마토를 심을 땅을 고르는 걸 보면. 그러므로 어쨌든 행복한 중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제는 덥다 싶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온도가 급강하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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