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3.28 09:53 의견 0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그것이 내가 날마다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페르난도 페소아

지금까지 나는 적지 않은 시를 썼다.

물론 앞으로도 더 많이 쓸 것이다.

내가 쓴 모든 시가 그 한 가지를 말하지만 각각의 시마다 다르다.

존재하는 것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말하기에.

가끔 나는 돌 하나를 바라본다.

돌이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돌을 나의 누이라고 부르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는 그것이 하나의 돌로 존재해서 기쁘다.

그것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서 좋다.

그것이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어서 좋다.

때로는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느낀다, 바람 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태어난 가치가 있구나.

# 나도 하나 기어코 끝냈다. 그리고 봄맞이 시작이다. 옛날에는 먼 밭부터 일했다. 멀다고 해서 그리 먼 것도 아니다. 이백 미터 안 쪽이다. 이제는 가까운 곳부터 한다. 그래도 힘이 넘쳐날 때는 오지랖을 떨어 나누어 먹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다 끝까지 못 가고 말면 그만이지, 뭐, 한다. 해봐야 다 먹지 못한다. 옛날에는 상추나 고추배추, 심어놓고 길러놓으면 와서 뜯어가고 좋아들 했다. 심지어 서로 가져가려 했는데 그걸 누가 뜯어, 언제 그걸 하고 있어, 데려다 줄 이가 없네, 한다. 그렇다고 내가 길러 수확해서 보내줄 정도는 되지 못한다.


이제야 나는 아, 알았다, 고 고백한다.

스무살땐 내 벗들도 스무살이었다.

뜻밖의 발견이었다.

이제사 깨달았다.

내가 서른 살 때 내 벗들도 서른 살이었다,는 사실을.

크크크 장하다.

맹맹이 콧구멍만한 텃밭에 반 고랑하고 앉아 놀고 반고랑 객토하고 얼핏 현기증 같은 걸 느껴 의자에 앉아 쳐다본다. 아무래도 하세월이다. 그래도 재밌다.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줄 알고 얼마나 애졸였던가.

이제 곧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질 것이다. 봄바람, 꽃향기 온유하기만한 봄은 왔겄마는 달롱이, 냉이, 씀바귀 캐러 오던 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보살탱이들은 나비처럼 어딜 갔을까. 즐거움을 괴로움이라고 보고,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보라 했던가.

그렇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어느 한 여자, 가련한 어머니의 가랭이 사이에서 피투성이로 태어났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시 돌아가신 위대하신 어머니의 물, 불, 흙, 바람의 뱃속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겨우 마흔 살이다, 하고 나니 멋쩍어 씨익 구름 낀 하늘보고 웃어보는 봄이다, 봄. 봄의 생애 속에서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저질러볼까? 뭐 좀 신박한 것 좀 없을까?

내게도 산산조각나는 흙부처가 아닌 금부처님 한 분 계셨는데 어디다 두었지? 반가사유, 녹여서 팔면 한 이천 만원은 된다, 했는데. 절깐 아무리 뒤져봐도 도무지 찾을 길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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