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오늘이라는 텃밭농사에 대한 오르가즘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4.04 09:00 의견 0

사건과 사고는 다르다. 지나가면,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곤 한다. 멈추면 마음하기가 된다. 요즘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오르가즘을 느낀다.

첫째, 집중하고 몰입하지 못하면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다. 고추밭 객토를 하는데, 노보살이 올라왔다.

<스님, 뭐 심을라카능교?>

<꼬추세울라꼬.>

<.....그놈의 꼬추는?!>

관음을 들킨 것만 같다. 크크. 밭은 있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버림받은 시간들 모냥 풀만 욱 자라 꼭 폐사같이 되어 보기 싫고, 육체의 움직임은 번거롭기만 했는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냄새나지 않게 하고 추레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는 내게서 오르가즘을 느낀다. 나역시 다른 절에 가면 법당 다음으로는 그 스님의 텃밭을 가본다. 그 중의 상태가 고스라니 나온다.

둘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시덕거려도 회복불가능한 시간은 있다. 살아있다는 건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거다. 그 회복불가능의 몸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스님, 그걸 삽으로 해요?>

<그럼?>

밭에서 삽질 하는데 마을에서 처사가 올라와 한 소리 한다.

<극기훈련하시는 것도 아니고. 관리기로 돌리면 금방인데. 스님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처사가 묻는다.

<나 공병대.>

처사가 기가 막히다는 듯 킬킬대고 웃는다. 같이 키득대고 웃으며 나는 또 오르가즘을 느낀다.

관리기를 빌려서 해봤다. 트럭을 빌려 농협에 가서 관리기를 빌리고, 다시 또 트럭을 빌려 관리기를 가져다 주고, 번거로웠다. 멜랑콜리하지 않았다. 시시덕거리며 삽질하는 게 딱 내 체질이었다.


셋째. 스님이세요, 작가세요, 농부세요?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인터뷰하겠다고 어느 기자가 왔다. 질문에 야릇한 압박감을 느껴 피식 웃었다.

<스님, 말고는 다른 건 신분적 존재가 아니라 행위적 존재가 아닌지요?>

내가 되물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스님 같지 않다>는 의표일 것이다. 작가도 아니고 농부도 아니고. 아싸, 오르가즘을 느꼈다.

<잠깐만.>

<오줌 마려워서.>

밭두렁에서 고이춤을 풀고 오르가즘을 질질 쌌다.

가능한 스님같지 않게 살고 싶다. 가능한 작가답지 않게 살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쓰는 이유는 뭘까. 스님답지 않고 작가답지 않기 때문일까. 그러면 어떤가. 마음만 살아있음 되는 거지. 어쩌자고 저 꽃들이 막 피어대고 있는 것인지. 산수유, 진달래, 목련. 저 꽃들의 꽃망울에 나는 바보처럼 입을 헤 벌렸다. 머츰하던 봄의 오르가즘에 코를 실룩대니 가슴이 확 트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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