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물빛, 그 흔적
김금용
당신이 떠나던 날 아침 나는 바다로 달렸다
당신은 산으로 가고 있는데,
당신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일 거라고
나는 변명 대신 길이 끊어지는 바다로 달렸다
물빛이 왜 검지, 왜 파랗지 않은 걸까
당신은 가보지 못한 바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떠나는 이의 근심으로 들어찬 까만 바다
대답 없이 앞만 바라보며 운전하는 내 등 뒤에서
당신은 낮게 읊조렸던가
갓 추수한 서리태를 넣고 지은 가마솥밥에
당신이 끓인 된장국, 더 먹겠다고 해도 좋을 걸
숲그늘 깊어 다시는 돌아오기 힘든 산으로
캄캄한 흙산으로
바다와 반대편 좁디좁은 땅 속으로
당신이 떠나던 날
나는 방향 없이 네비에 동해를 찍고 달렸다
당신의 빈 몸을 태우고
미처 고백하지 못한 미련을 태우고
가고 싶다던 바다로
귀에 웅웅거리는 당신의 읊조림을 따라 차를 몰았다
파란 하늘만큼 파랗게 물들기를 바라는
지중해 바다빛 차를 몰았다
창창한 창칼 잎새가 깊숙이 심장을 파고들던 날
숲으로 떠나가는 당신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지 않고
길 끝나는 바다까지 달려간 건 참 잘한 일,
용감하게 홀로 바다에서 기다리기도 참 잘한 일
가벼워진 당신과 바다 속을 유영하는 것도 참 잘한 일
지중해빛으로 몰려드는 어둠을 함께 껴안은 일
*김금용시인: 1997년《현대시학》등단. 시집『물의 시간이 온다』『각을 끌어안다』『핏줄은 따스하다,아프다』『넘치는 그늘』『광화문쟈콥』중국어번역시집『문혁이 낳은 중국현대시』외 두 권. 김삿갓문학상, 동국문학상,펜번역문학상. 손곡문학상 등등. 현, 계간《시결》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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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바다엔 왜 저리도 물이 많아요?>
열네 살 내가 물었다.
<이 땅을 살다 간 사람들의 눈물이 모여 그렇지.>
노사가 대답했었다. 그리고 얼마나 그 희로애락의 바다에 출렁거리는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고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겠다는 게 헛된 삶이었나.
<바다는 목숨의 바다지. 번뇌의 바다이기도 하고. 통곡의 바다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원증회오, 미운 사람은 만나야 하고,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져야 했고. 미(迷)고 망(妄), 미망(迷妄)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에서 일어나고 마음에서 없어지니 모두 팔만장경(八萬藏經) 마음의 바다다.>
그랬다. 일각이랑 뼛가루를 손에 쥐고 날렸다.
햇살의 파편들이 날아다녔다.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가고
그 뼛가루가 파도에 출렁이다 한참을 하얗게 떠가더니
물밑으로 가라 앉았다.
사자도 연꽃도 영취산도 싫었다. 고통의 바다는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고 크나큰 변괴가 어디 한 두번이었던가. 빨리 도솔천으로 오르고 싶을 때가 많았다.
<가자. 떠나자.>
<....어디로요?>
<천경만론(千經萬論), 저 바다가 가득 넘치는 바다로.>
<....네?>
<무량광명의 바다로.>
죄(罪)를 짓고 얼굴을 붉히는 동안 법당 앞 화단에 목련 꽃이 진 자리에 잎새들이 넓어졌다. 갑자기 왜 어머님이 끓여주시던 된장국이 이리도 먹고 싶어지는 건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말라붙은 입술, 굳은 어깨. 흐리멍텅한 눈빛.
돌아보면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으려 했다. 연신 숨을 허덕이기는 했지만 감정의 경계도 제법 잘 지켜온 편이었다. 그런데 하얀 나비 한 마리 법당 앞에 오래오래 허공을 바다인양 그 몸뚱이를 팔랑거리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