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창포길 통신】 이쁜이할머니와 머위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3.03.31 00:20 의견 0

박사골 이쁜이할머니댁의 기울어가는 시멘트 담장 밑이 소란스럽다. 갓 올라온 머윗잎들이 올망졸망 해바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지바른 곳이라 다른 곳보다 빨리 자란 모양이다. 냉이를 캐다 말고, 치밀어 오르는 욕심에 웃자란 녀석으로 몇 잎 뜯었다. 묏등 아래 언덕에서 막 돋아나는 씀바귀까지 몇 뿌리 캔 뒤 돌아오다가 이쁜이할머니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이쁜이할머니답게 구부러진 허리를 이쁜 '유모차'로 달래며 걸어오신다. 저지른 짓이 있어서 괜히 심장이 바쁘게 뛰었다.

"할머니! 봄마중 나오셨어요?"

"예! 소풍 나왔지요."

"어디 편찮으신덴 없고요?"

"늙은이가 안 아프면 쓰나?"

"요샌 봄나물 안 뜯으세요?"

"그런 거 못해. 이제 멍충이가 돼서 먹고 자고 싸는 것만 하기도 벅차요. 흘흘흘!"


할머니의 주름 담긴 웃음이 봄햇살보다 곱다. 노란 빛을 아낌없이 뿌리는 산수유꽃보다 더 예쁘다. 내내 어둡던 가슴이 심지라도 돋운 듯 환해진다.

"저는 나물 뜯었어요."

신발 잃어버리고 온 아이 자수하는 심정으로 쭈볏거리며 봉다리를 열어보인다.

"지금이 한창 이쁘게 나올 때지. 그래, 뭐가 이리 많누?"

"나숭개하고 씀바구... 그리고 할머니네 담 밑에서 머우도 몇 장 뜯었어요."

"그래? 잘했구먼. 놔두면 뭐해. 금방 지천일 텐데 늙은이 혼자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구. 더 뜯어가요."

돌아오는 발걸음이 날 듯 가볍다. 봄이다. 봄이니까 가벼운 거다. 쌀밥 짓고 머위 데쳐 상에 올렸다. 다섯 쌈이면 봄을 몸에 들이기 충분하다. 밥상이 풍성해지니 왕후장상 부럽잖다. 봄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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