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 교수의 모스크바 이야기】모스크바에서 고려인복권 법령 채택 30주년 기념회의 진행

김원일 러시아민족우호대 교수 승인 2023.04.20 14:34 | 최종 수정 2023.04.20 15:32 의견 0

고려인연합회는 1993년 4월 1일 있었던 고려인에 대한 정치적 복권 법령 채택 30주년을 기념하는 회의를 지난 3월 31일 진행했다.


지난 3월 31일 고려인연합회는 러시아민족회관에서 1993년 4월 1일 있었던 고려인에 대한 정치적 복권 법령 채택 30주년을 기념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행사장에는 나를 비롯해 김 모이세이 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 부가이 니콜라이 역사학자, 송 잔나 교수, 엄 넬리 교장 등이 참석했다.

김 모이세이 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


당시 고려인복권을 위한 러시아 의회위원회에 참석해 연구를 수행했던 부가이 니콜라이 박사가 주요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약 6개월 동안 이어졌던 위원회 활동에 관한 흥미 있는 뒷이야기들을 회고했다.

당시 위원회에는 자신 외에 김영웅 교수, 김 게오르기 교수 등 고려인 동포 출신의 학자와 연구자들이 참여했고 이들은 위원회 사무실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집에서도 자주 모여 숙식을 함께 하며 밤새 연구와 논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아지트 역할은 당시 러시아의회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사할린 교포 출신 김영웅 교수 집이었다고 했다.

부가이 니콜라이 박사는 역사학자로 주로 고려인 문제에 천착하여 지금까지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고려인 강제이주가 이루어진 주된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는 고려인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었고 독일인, 체첸인, 칼미크인, 타타르인 등 많은 민족의 이주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도 고려인 이주는 1937년 맨 처음으로 진행되었다.

부가이 니콜라이 박사


그는 소련이 고려인 이주를 결정한 것에는 1937년 시작된 일본의 중국침략도 큰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작고한 박 미하일 역사학 박사는 강제이주는 일본과의 갈등 요인을 없애기 위한 소련 당국의 고육지책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특유의 단결력과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진 민족인 한국인들이 한반도 가까운 지역에 집단 거주하는 것에 대한 소련 당국의 정치적 부담이 고려인 이주의 주된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그리고 고려인 이주의 경제적 이유도 제시되었다.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고 특유의 성실함과 농업기술력을 가진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지역 농업개발에 투입할 경제적 요인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강제이주 이후에 고려인의 여러 정치적 권리가 제한되었다. 고려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가 금지되었고 군에 징집되지도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 공민권 제한 조치들은 1956년과 1957년 이루어진 스탈린 격하 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부분이 해제되었다.


1993년 이전엔 고려인은 군에 복무하더라도 대령 이상의 진급이 불가했는데 복권 이후에 고려인 출신 장성이 9명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인 동포들과 관련한 각종 단체에 대한 러시아 정부 차원의 지원들도 활발해 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덕분에 고려인 이주 140년, 150년 기념행사들도 성대하게 잘 치러졌다고도 했다.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러시아에서 만난 고려인 동포지도자 중에는 1960년대 전후해서 모스크바로 유학 오신 분들을 상당수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얼마 전 작고하신 이일진 선생도 있다.

자유 토론 중에 김대중 대통령의 고려인 동포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 감사하고 동감하는 반응을 보인 분들이 많았다. 한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매번 고려인 동포에 대한 정책도 달라지는 면이 있다면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분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을 해서 내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고려인들은 러시아를 사랑하지만 역사적 조국(한반도)을 잊지 않고 있고, 잊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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