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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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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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지각은 각오해야 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동네를 도는 시간은 정확히 10시부터 11시 사이였으니까. 이윽고 저 멀리 우체부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골목 어귀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는 쏜살같이 우리집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최대한 태연스레 아저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 아저씨! 우리집 우편물도 있나요?”
힐끗 나를 쳐다본 아저씨는 가방 속을 뒤적거려 몇 통의 편지를 꺼내 들더니 그 중 한 통을 골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편지들을 우편함에 넣더니 알 듯 말 듯 미소를 띄우며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성적표가 든 우편물은 내 수중에 들어왔지만, 나는 갑자기 온몸의 힘이 쭉 빠진 듯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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