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8.13 09:00 의견 0

길 위에서의 생각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류시화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한 마음을 놓아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도 그 어떤 인연 하나로 오늘까지 꽤나 떠돌며 살았다. 그렇게 오늘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를 나그네로 살게 한 세상, 자연이 있었다. 자연, 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위대한 존재다. 그랬다. 붓다와 함께 하는 날, 새벽에 일어나면 '음, 오늘도 살았군'하며 어두웠던 방을 나와 기도를 한다. 물론 나의 기도는 인디언족의 기도와는 조금 다르다.

인디언의 기도

날이 밝으면 태양이 당신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를

밤이 되면 달이 당신을 부드럽게 회복시켜 주기를

비가 당신의 근심걱정을 모두 씻어 주기를

산들바람이 당신의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를

당신이 이 세상을 사뿐사뿐 걸어갈 수 있기를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기를

나도 산의 일부다. 나는 자연, 우주 전체가 머무는 곳이다. 내가 없으면 자연, 우주도 없다. 근래에 내 주위에 함께 했던 이들이 나에서 하나 둘 산으로 또 다른 어떤 별, 새로운 우주의 나그네로 떠남에 쓸쓸해 했다. 비로소 우리는 하나가 되리라, 했던.

산딸기 익어가는 달, 물고기 뛰노는 달, 옥수수 따는 달, 모닥불 주변에 어깨와 어깨를 기대는 달......했던. 내 눈에 들었던 그 나그네들의 눈빛에 새로운 떠남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영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모른다. 다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가끔 올려다 볼 뿐이다.

다만, 인연에 의해 생기하고 인연에 따라 소멸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우리 모두에게 그 시간은 온다.

앞으로 겪을 다음 세상, 다음 삶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아직 내 손이 할일이 있기에. 그렇게 현존하였기에 후회하거나 울지도 않는다. 두려워하거나 떨지도 않는다. 아직 내 몫의 저녁노을이 영광스런 밤들이 남아 있기에.

나무와 풀과 허공을 나는 새들의 소리를 듣는다. 흐르는 물소리, 매미 우는 소리도 들린다. 당신의 숨결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함께 웃고 울고 같이 따먹었던 월문리의 열매들, 함께 할 수 있어서 부끄럽지 않았다. 대전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출 수 있었던. 그 아름다움에 행복했을 뿐이다.

누구의 노래였던가. 세월을 몰고 간 나의 어린 왕자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잘 가라.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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