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셔츰부 바결랍츰부, 내가 희양산 노스님을 만나뵌 건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이었다.
산중 토굴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노스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휘영청 달밝은 보름날이었다. 어쩌다보니 밤이 늦었고 일정상 결례인줄 알면서도 밤에 산을 올랐다.
인사받으셔야죠.
인사는 뭐, 보면 인사지.
나는 가지고 올라간 책 한권과 양갱 꾸러미를 노스님께 내밀었다. 토굴이라고 배흘림 기둥도 없었고, 다포식과 주심포식, 익공식도 아니었다.
노스님은 암벌랍츰부 비러츰부 하는 츰부경을 외우시며 아궁이에 불을 때고 계셨다.
그 다음은 아루가츰부 답붜츰부 살더뭐츰부살더일 허뭐츰부...죠?
.......지랄.
노스님의 그 말씀 한 마디에 눈을 씀벅이던 나의 경계가 온통 허물어졌다.
토굴이 참 아늑해요.
변변치 않다. 그나저나 오는 길에 달이 참 좋지?
뭘요, 제 달은 변변치 못한 달이라 죄송합니다.
......지랄.
노스님의 말씀에 그만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변변치 못하다? 그럼 내 문제 하나 낼 터이니 알아맞춰봐라. 하시며 부뚜막에 세워두신 당신의 주장자를 공양간 바닥으로 휙 던지셨다.
"이 지팡이를 톱이나, 도끼같은 손을 대지 말고 지팡이를 짧게 만들어 보아라!" 하고 말씀 하시는 거였다.
아루가츰부 답붜츰부를 맞추면 스님, 솔바람차 한잔 내주시는 거죠?
이윽고 노스님이 패트병에 들어있는 솔차를 꺼내 한 잔 내미셨다. 하여 감사합니다, 하며 슬쩍 물어보았다.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한 평생 사셨는데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
할 말 없대도. 나한테 오도송悟道頌인지 육도송인지 그런 게 있을 수 있겠냐?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아궁이에 불때고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갔다 해라. 그게 내 열반송 전부다. 열반송이나 묻는 이 땡중놈아. 이게 다 헛것인 줄 알았으면 빨리 내려가라. 날이 어둡다. 헛것을 떠나면 그것이 곧 해탈인 게여.
나는 합장을 한 채 고개를 수그리고 돌아섰다.
산을 내려오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가질 것도 버릴 것도 깨달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삶. 무애, 무득의 삶. 그랬다, 누가 그랬던가. 네가 만나는 사람이 너의 인생을 결정한다, 고.
월봉 노스님을 만나고 나는 서울살이를 집어치우고 문막, 산골살이에 돌입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한양대 국문과 교수라는 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노스님께서 한글을 다 잊어버렸다고 글 잘 아는 자네가 읽으라며 책을 주셨다는 거다. 책을 낸 밀알출판사로 전화해서 내 연락처를 간신히 알았다고. 내가 노스님께 양갱과 함께 책을 드렸는데 노스님은 양갱만 드시고 그 책을 펼쳐보지도 않으시고 다음 날, 그 책을 산을 올라왔던 교수님께 주었다는 것이다.
교수님도 그 책을 받아 베낭에 넣었었는데 책갈피에서 삼십만원이 든 봉투가 있어 노스님께 다시 전달해 드렸다고. 그러자 노스님이 허러히리 후루 후루루,라며 노스님이 내게 고맙다, 전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한다.
전화를 끊고 가슴이 후득거렸다. 노스님의 천진무애하신 그 진면목을 보는 듯 했었다.
그런데 그날, 어떻게 노스님에게 솔바람차를 얻어먹을 수 있었느냐고? 공양간에 불쏘시개 하려는지 나뭇단이 있어 그중 노스님의 주장자보다 더 긴 놈 하나를 빼서 노스님의 주장자 옆에 슬쩍 놓아두고 합장배례했었다.
낙엽이 지고 종일 가을비가 내렸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쓸쓸히 바라보는데 왜 갑자기 월봉 큰스님과의 추억이 떠올랐을까, 지금은 막내 사제가 그 노스님께서 머물던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양갱 한꾸러미 사가지고 가서,
이 지팡이를 톱이나, 도끼같은 손 대지 말고 지팡이를 짧게 만들어 보아라! 해볼까? 그나저나 내가 그 험한 산을 다시 오를 수나 있으려는지.
그러면 솔바람차 한 잔 얻어 마실수 있으려는지.
허러히리 후루 후루루.
뜨거운 것이 안에서 막 솟구쳐 올라 비 내리는 창밖에서 시선을 뗀 채 벽에 세워둔 지팡이, 길다란 막대기를 하염없이 쳐다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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